나는 지우를 혼낼 수 없었다.

아이들의 삶도 쉽지 않다.

by 여울샘

지우(가명)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3월 새 학기 초부터 눈길이 가던 아이 었다. 학기 초에는 아이들에게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알아가기에 바빠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바쁠 시기이다. 하지만 이제 아홉 살이 된 지우는 교실에 오면 엎드려서 자곤 했다. 지우는 집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길래 아침 시간에 교실에 오자마자 자고 있을까. 중, 고등학생처럼 학습에 지치고 교과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공부를 포기할 시기도 아닌데, 그러기엔 너무 어린아이인데 이 지우는 그 어린 마음에 무슨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아침, 지우는 자지 않고 공책 가득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무엇을 써 내려가는지 궁금했다. 지우 옆을 지나가다 선생님이 지우가 쓰고 있는 것을 읽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지우는 꼭 선생님만 읽으라며 그 공책을 건넸다. 그 공책 안에는 아이 마음속에 있는 고통이 가득 담겨있었다. 지우는 소설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밤에 꿈을 꾸면 그 꿈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라고....


그 공책 속에는 엄마와 아빠가 너무 많이 싸워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매일 어떻게 싸우시는지 사실인지 지우가 상상 속에서 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공책 안에는 지우의 아픔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렇게 부모님이 싸우다 헤어지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 부모님이 서로 싸우지 않고 우리 가족들이 행복해지게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써두었다. 그래서 지우에게 이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다 꾸며쓴 이야기라고 했다. 지우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지만, 그 이후 나와 관계를 잘 쌓아나가며 교실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업에도 점점 참여하기 시작하고 아침에 와서 자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2학기가 되어 어느새 10월이 되었다. 다시 지우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색깔 테이프로 책상과 사물함을 이으며 하루 종일 다양한 장난을 하고 있는 지우. 몇 번을 이야기해도 수업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하루 종일 휴지를 구기고, 만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이들과도 갈등이 많이 일어나고 아이들을 때리는 일도 잦아졌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지만 너무 오래 반복되는 그 행동 탓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오늘은 참다 참다 학교 끝나고 교실에 잠시 남으라고 했다. 지우의 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과 후가 있다는 지우에게, 너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방과 후 수업이 아니라고 말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지우를 교탁 앞에 앉히고 화난 마음을 호흡으로 진정시키며 물어보았다.


"지우야,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거야?"


지우는 교탁 앞 작은 책상에 엎드려 손으로 책상을 긁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선생님께 심통이 났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다. 조금 더 화가 날 뻔했다. 이 아이는 뭘 잘했다고 이렇게 반응하는 걸까 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했다.


"만약 요즘 마음이 힘들거나, 집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선생님한테 알려줄래?"


지우는 고민을 하더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요즘 동생이 저를 너무 힘들게 해요. 유치원 다니는 동생인데, 저를 계속 놀리고 괴롭히고 때려요.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엄마는 저녁 늦게 와서 이웃집에서 엄마 올 때까지 생활하는데 그것도 힘들어요. 이웃집 할머니가 잘 돌봐주시긴 하지만... 이런 상황이 힘들다고요.."


지우가 종종 이야기해서 알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우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아도 부족할 나이에 밤늦게나 되어야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며, 동생과 함께 이웃집에 있어야 하는 지우의 마음은 어떨까. 학교에서 친구들에게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도 이야기하고, 화도 내고 하지만, 부모님도 계시지 않은 이웃집에서 지우가 편안하게 있기는 당연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 혼자도 아니고 어린 동생까지 챙기며 매일 그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지우였다. 아마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으니 매일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부족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 지속되면 아이들도 우울해진다. 마음이 그렇게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면 곧잘 해내던 과제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학교에 와서 앉아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인 것이다.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하니 와서 앉아있지만... 이 아이는 무엇인가를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아픔을 공감받고, 사랑받고, 위로받아야 할 때인 것이다. 하지만 가사와 바깥일을 해내느라 이미 힘든 부모님은 아이에게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해 더 자주 말하셨던 것 같다. 그러니 지우는 매일 밤 그렇게 기다렸던 엄마를 만나고서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한 번 듣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는 학교 가서 잘해야 한다고, 친구들 때리거나 장난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마음도 너무나 이해가 가고.. 그 벅찬 상황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러니 내가 지우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몇 가지 질문을 더 건넨 후 아이의 마음을 눈을 맞추고 공감해주었다.


"지우 많이 힘들었겠다.... 마음도 힘들고 아픈데, 선생님이 자꾸 집중하라고 공부하라고, 친구들이랑 장난치지 말라고 해서 더 속상했겠네... 선생님이 지우 마음을 너무 몰랐다. 선생님이 지우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 이야기해서 미안해..!"


나의 이야기를 들은 지우의 눈이 조금 빨개지기 시작한다. 이미 지쳐있는 이 아이의 마음...

나는 지우를 혼낼 수 없었다. 지우가 매일 하루하루를 잘 견뎌내고, 웃으며 지내고 있는 것 자체가 대견한 일이었다. 그 아이가 처한 힘든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그저 교실에서 보이는 행동 하나로

지우를 마음속으로 평가하고, 판단하고,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던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지우를 한 번 토닥여주고, 지우가 이미 너무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제 동생이 너무 힘들어 외동으로 살고 싶다는 지우. 지우에게는 동생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고 있었던 것 같다. 기특하게 언니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지우가 조금은 덜 힘들 수 있도록,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아이를 조금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어야겠다. 조금 더 넓은 품으로 아이를 감싸주어야겠다. 교실에서 있는 시간만큼은 지우가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아직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교사가 되기엔 멀었나 보다.

유능한 교사가 되려하지 말고,

아이들의 여리고 소중한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교사가 되어가자.


2022. 10. 13.

지우의 아홉살 인생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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