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돌 Aug 09. 2024

오늘 하루

많은 배움과 성찰이 있었던

3개의 청소년대학 학과 진행과 2번의 예행연습, 3번의 평가회의가 있었던 하루.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A에게 연락했다. "일어나면 연락해요 A." 빠르게 답장이 오지 않아 조금은 초조해하다 이내 전화를 건다. 받지 않는 A, 오만가지 생각이 다시 머리를 스친다. 혹시 오늘도 못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던 시간도 잠시 A에게 연락이 왔다.


A는 청소년대학에서 학과를 진행하는 청소년교수다. 저번주 목요일 사상 초유의 교수가 학과에 나타나지 않았던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학과 시작 하루 전 밤 10시, 늦은 시간임에도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아침에 해야지, 하며 다시 핸드폰을 덮었다.


9시 50분, 학과가 시작했다. 하나 둘 도착한 청소년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다 도착했고, 도착하지 않은 1명에게 연락을 하니 오늘 학과가 진행되는 줄 몰랐다며 10분 이내로 도착하겠노라 다짐한다. 학과 내용을 충실하게 따라 하는 청소년 열심히 준비해 온 A까지 또 하나의 학과가 끝났다.


끝나고 둘이 간단하게 마주 앉아 평가회의를 진행하며 A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조금 생각하는 시간을 거쳐 나온 A의 대답은 "좀 아쉬워요."

간결했다. 첫 번째 시간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 오늘 학과에 참여한 청소년들을 한번 더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등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듯 후련한 표정을 하고 있는 A를 마주했다.


이런저런 소감을 나누다 문득 A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건넸다.

"정말 다행이에요 A. 첫 시간에 실수로 학과를 진행하지 못했던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잘 완수해 냈으니까요. 실패를 성공경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때 주저앉지 않고 더 힘을 내서 끝까지 완수해 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진심이었다.

저번주 청소년교수의 노쇼는 청소년대학을 시작한 이례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멋진 마무리를 해준 A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실패는 종착지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지만 과정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는 무언가를 A를 통해 봤다. 도망치고 회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완수한 A를 칭찬한다.




12시, 어김없이 교육봉사동아리 친구들이 청소년대학 학과를 진행하기 위해 기관에 도착했다. 이 친구들은 작년에 이어 세대교체가 이뤄졌음에도 기관에서 꾸준하게 활동하는 멋진 친구들이다. 14시에 시작하는 학과 진행을 위해 2시간 일찍 기관에 도착해서 학과를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은 일에 치여 점점 희미해지는 열정의 촛불에 기름을 부어준다.


오늘은 총 3회기 중 마지막 수업, 종강이었다. 학과 준비를 도와준 뒤 같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소감을 나누며 이야기를 했다. 힘들었어요. 즐거웠어요. 의미 있었어요 등 많은 말을 이어나갔지만 이 학과를 운영한 친구들과 나눴던 수업에 대한 평가보다는 삶을 들여다봤던 것이 더 마음에 남았다.(평가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교육자의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성교육의 범위, 어디까지 준비하고 도와줘야 하는 경계를 정하는 문제 등.)


"2학기에 학교를 그만 둘 생각도 하고 있어요." ▶ 밝은 모습을 하고 있어 전혀 몰랐던 친구의 말이었다.

"1학년에 이어 2학년이 되어 학과를 진행했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시원섭섭해요."  ▶  2년간 함께 한 청소년의 말이다.

"또 고민 생기면 올게요."  ▶ 고민이 있을 때 나를 찾아준다니 마음이 울리는 말이다.


고생했다. 3번의 수업을 준비하기까지 달려온 모든 과정. 특히 수업이 있으면 그 전날 와서 리허설을 해본다며 분주하게 주방을 사용하던 너희의 모습이 눈에 아련하게 남을 듯하다.




오후에는 기관에 재잘거리며 4명의 청소년교수가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 사실 이 친구들과는 유선으로 소통하다 조금의 오해가 있어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확실히 오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요즘 일에 치여 좀 예민해져 있었나 보다 하며, 또 열심히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처음 도입에는 내가 청소년교수라는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줘야 해요. 오프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잘 준비해 오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수업 참여 대상자가 내향형인지 외향형인지 잘 파악해야 해요. 외향형 청소년들이 많은 수업은 어떤 말을 해도 즐거워하고 분위기를 잘 풀어가지만 수업의 방향이 쉽게 틀어질 수 있고, 내향형 청소년들이 많은 수업은 무슨 말을 해도 듣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될 수 있지만 점차 서로 익숙해지면서 그들의 속도를 맞추는 법을 배우게 될 거예요."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청소년끼리 말하느라 앞에서 진행하는 청소년교수의 말에 집중하지 않을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내게 집중해 달라는 의미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알려줄게요."


"아이스브레이킹은 정말 제일 중요한 수업의 요소 중 하나예요. 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깰 수 있는 몇 가지 노하우를 알려줄게요."


"이 수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청소년들이 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서 얻어갈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 만들기 활동을 한다면 단순히 만들기를 재밌게 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이유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흥미를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수업의 과정에는 기획이 들어가야 해요. 말을 할 때 참여하는 청소년의 반응이라던지 강의의 분위기 흐름 등 고려할 것이 아주 많아요!"


"열심히 준비한 만큼 얻어가는 것이 많은 활동이에요. 배움의 뒷모습, 최근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해줬어요. 가르침에는 수없이 많은 시간이 뒤에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요."


수없이 많은 청소년교수들을 만나며 나눴던 피드백이다.


13개의 학과 약 50명의 청소년교수, 36번의 수업 중 21번이 진행된 지금,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청소년교수들이 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대강 이렇게 말고, 구체적이어야 해요.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내일 처음 진행하는 청소년대학 교수가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 찾아와 내게 "이렇게 할 생각이에요"라며 말했을 때 내가 한 말이다.


이 친구들은 얼마나 기특한가? 참여자가 제대로 모이지 않아 학과를 개설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을 때 연락도 없이 기관에 찾아왔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에 불을 지피는 마디, 그래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학과를 진행할 있게 도와줘야겠다.


정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참여 청소년이 모이지 않으면 청소년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인근 키움센터와 연계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 시작이 바로 내일이다. 청소년교수들이 긴장과 동시에 많은 준비를 해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일 첫 시작을 함께하고자 한다.


가보자, 종착지가 어디일지 몰라도.




오늘 종강한 또 다른 학과 청소년들과 평가회의를 진행했다. 이론적으로 탄탄하게 준비해 오는 것에 놀라고, 참여하는 청소년들을 진심 어린 사랑으로 품는 모습에 두 번 놀랐다. 청소년지도사라는 이름을 갖기까지 품었던 초심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이 청소년교수들은 마음에 울림을 선물했다.


물론 학과 진행을 하면서 미숙한 모습도 있었고 실수하는 모습도 보였다. 학과를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내 말에 관장님은 "그 과정을 돌아보며 여러분을 보는 마음도 이해해 주길 바라요." 뼈를 때리는 마디를 남기셨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관장님은 얼마나 많은 부분을 다듬어주고 싶으셨을까? 그렇게 가면 어려울 텐데, 좋은 방법이 있을 텐데 내가 청소년교수들을 보는 시선과 관장님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지 않을 있음을 깨닫게 하는 마디였다.


청소년교수들에게 수업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대해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남을 가르쳐보는 경험을 통한 배움과 성찰. 보이지 않는 노력에 대한 감사. 더 나아가 수업을 준비하며 참여하는 대상을 고려하고 연구하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수용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게 바로 유스캠퍼스가 아닐까?

그런 경험이었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이 청소년들이 한 땀 한 땀 편지를 쓰는 모습이 기억난다. 누군가에게 자필로 편지를 쓰며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학과 참여 청소년들에게 손수 쓴 편지와 준비한 간식

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무엇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함께할 때 행복했던 순간 따뜻한 마음과 추억 하나를 선물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 내가 본 이 친구들은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그 순간을 선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여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늘 하루는 길고 길었다. 행정문서를 하기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지만, 많은 배움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이 있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를 기록한다.


내일, 그 내일의 내가 오늘을 양분 삼아 튼튼하게 자라있기를 오늘의 내가 응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