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주머니

신혼일상

by 여울돌

당신과 결혼한 지 3년 차. 11월에 결혼해서 실제로 같이 산 건 약 16개월 남짓이니, '날로 먹은 3년 차'로 소개하곤 한다. 만 27살에 결혼 3년 차라고 하면 다들 놀라는 눈치를 보인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하루 8시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 퇴근 후 문을 열면 내게 폭 안기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다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자양강장제 같은 사람.

당신은 하루의 말주머니가 있다. 부부의 시간이라며 핸드폰과 다른 할 일을 내려놓고 둘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하루는 어땠는지 혹 힘들지는 않았는지 내 품에 안겨서 혹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실 이 부부의 시간에는 비밀이 있다.

바로 분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말주머니에 있는 말을 모두 꺼내지 않으면 당신은 부부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뾰루퉁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 모습마저 귀엽지만 충분한 만족감을 주기 위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날이 많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을까?

당신의 하루를 소상하게 듣는다. 내가 출근할 때 보통 잠들어있는 당신이기에, 일어나서 무엇을 했는지 하루에 중요한 사건은 없었는지, 밥은 어떤 메뉴로 누구와 먹었는데 맛은 어땠는지. 하루를 나눈다. 흥미로운 눈을 떠 함께 듣고 있으면 달콤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사실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이미 주고받는 연락을 통해 대강은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얼굴과 살을 맞대고 하는 대화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귀여워 하염없이 바라보며 행복을 느낀다.

회사 일이다, 교회학교 교사 일이다 하며 당신과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이 적을 때 미안하다. 그럼에도 그 시간만큼은 농도를 꽉 채워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온 몸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당신이 좋다. 사소한 관심, 애정어린 시선, 걱정스러운 눈빛.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사랑이다. 아니, 가정을 이루기 전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확신을 얻은 것일까? 사실 선후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그렇다는 게 중요한 거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모습까지도 당신에겐 보여줄 수 있다.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망가지는 모습, 부족한 모습, 연약한 모습까지도 당신에게는 거리낌 없다. 어떤 모습을 보여도 사랑해줄 것이라는 신뢰 덕분일까?

시간의 흐름을 그래프에 비유하자면 이따금 당신의 진폭은 크지만 나는 조용히 우상향한다. 파동은 크지 않지만 안정감이 있다. 쌓여가는 정 속에서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해나가는 즐거움이 큰 날들을 보내고 있다.

당신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우리의 인연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내 곁에 와준 것,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일어난 기적 중 단연 최고의 기적이다.

오늘도 당신의 말주머니를 수집한다. 내일도, 모래도,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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