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록(彩錄)
매년 여름끼리 다투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해의 여름이 그 전해보다 더 길어진단다.
올해는 4월부터 11월까지가 여름이라더니
5월이 중순을 향해가는데 우리 집은 아직도 춥다.
(이래놓고 눈 감았다 뜨면 금방 또 여름이 오겠지)
아침저녁 봄추위에 마음이 덜 녹았나
건물에 둘러싸인 응달이라 딱딱해져 버린 것인가,
언제부터 이리 뻣뻣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다시 말랑해지기 위해 매일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딱딱한 돌멩이는
파편을 자꾸만 흘린다
어릴 때는 찹쌀떡처럼 하얗고 말랑한 나에게
작은 생채기라도 날까 싶어 굳히기 급급했는데
이제는 말랑한 대로도 제법 잘 버텨내게 되었다.
마음을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먹으면 먹을수록
내게서 튀어나간 파편, 그리고 다른 이의 파편들을
말캉한 내 두 발로 밟지 않기 위해 부산스러웠거든.
언제나 몸과 마음가짐 중에서는
몸의 가짐을 바꾸는 것이 더 쉬웠고
나를 지키는 방법은 단단한 겉모습인 줄 알았지만,
하얀 내가 조금 때타더라도
물렁하던 그 모습만큼은 그대로 두었더라면
전처럼 유연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됐으려나?
그래도 앙꼬는
조금이나마 나중에 굳지
부드러이 말랑거리던 찹쌀떡도
밖에 내어두면 금방이고 돌이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 중에 다행이라면
겉면의 찹쌀이 먼저 굳어버리고 나야
앙꼬 역시 딱딱해질 수 있다는 것인데,
굳어진 새 튕겨져 나간 조각들은
어디가 찾을 수도 붙일 수도 없겠지만
아직 앙꼬까지 안 굳어 얼마나 다행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