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으로 당한 만큼 갚아주려고 하면 항상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러면 너도 그 사람들이랑 똑같은 수준 되는 거야."
나는 이 말에 항상 의문이 들었다.
확률을 공부하다 보면 머지않아 조건부 확률을 만나게 된다. 조건부 확률이란 어떤 사건 A가 발생했다는 조건 하에 B가 발생할 확률을 구하는 것이다. 이는 P(B|A)로 표기한다.
두 사건 A, B가 독립이 아니라면 P(B)는 P(B|A)와 같지 않다. 즉, 아무런 조건 없이 B가 발생할 확률과 사건 A가 발생했다는 조건 하에 B가 발생할 확률은 같지 않다.
여기서 독립이란 서로 상관이 없다는 의미로, A가 일어나든 말든 B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A를 인물 a가 잘못된 행동을 할 사건, B를 인물 b가 잘못된 행동을 할 사건이라고 하자.
그러면 인물 a가 잘못된 행동을 할 확률은 P(A)로, 인물 a에게 피해를 입어 인물 b도 인물 a에게 같은 행동을 갚아줄 확률은 P(B|A)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 하에 사건 A와 B는 독립이 아니며, 따라서 P(B)는 P(B|A)와 같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P(A)와 P(B|A) 뿐인데, 이걸 비교하면서 인물 a와 인물 b가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P(B)를 알아내서 공평하게 P(A)와 P(B)를 비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인물 a는 아무 선행조건 없이 악행을 저질렀고, 인물 b는 선행조건이 있어 악행을 저질렀다. 만약 이 두 인물이 같은 수준이라면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하는 인물 c와 탈세를 위해 자신의 재단에 기부하는 인물 d도 같은 수준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여성 살인자는 주로 가정폭력을 겪다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겠어서 남편을 살해한다고 한다. 폭력보다 살인이 훨씬 더 중대한 범죄지만, 난 이 여성 살인자를 길가다가 마주친다 해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진 않을 것 같다. 이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날 해치진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저지른 남편을 마주치면 얻어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폭력적인 사람이니까. 나의 본능적 두려움에 따르면 이 여성 살인자와 가정폭력범은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아니다.
사적 복수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적 복수를 해선 안 되는 이유를 들며 '그러면 가해자와 같은 수준이 되니까'라고 말하는 건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P(B)는 P(B|A)와 같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