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어-워프 가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언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영화 <컨택트>는 크나큰 감동이었다. 언어학자가 이렇게 멋있게 나오는 영화라니.
변호사, 경제학자, CEO, 과학자, 엔지니어 등등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또 멋있게 나오는 직업군에 언어학자는 당연히 없었는데. 처음 보는 느낌이라 좋았다. 영화 자체도 재밌게 봤다.
영화 <컨택트>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근간으로 한다. 외계인의 언어를 해독하기 위해 파견된 언어학자는 언어를 해독하기보다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계인에게 우리의 언어를 가르치고, 또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외계인은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 없이 사고하는, 그래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생명체였다.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던 언어학자도 이들의 사고를 배워 조금씩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된다.
나의 미래에도 '사피어-워프 가설'이 재등장하게 된다.
카카오는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로 유명하다. 나도 카카오처럼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입사 전에는 솔직히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만족한다. 나보다 직급이 높든 낮든, 나이가 적든 많든 똑같이 이름으로 부른다는 게 확실히 상하관계를 덜 느끼게 해 준다. 모르는 분의 이름을 처음 들으면 이 분의 나이나 직급이 전혀 예상가지 않는 점도 재밌다. 얼마 전에 처음 인사를 나눈 분이 다른 팀의 팀장님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카카오처럼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들은 호칭만큼은 수평적인 언어인 영어를 써서 수평적인 사고와 문화를 만들고 싶은 것일 거다. '사피어-워프 가설'의 재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