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네이버 영화 소개글의 언어학적 비교
넷플릭스는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영화여도 유저마다 다른 포스터를 보여주고, 유저가 본 영화를 바탕으로 좋아할 만한 다른 영화를 추천해 준다.
하지만 영화 소개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관한 정보는 많이 없다. 검색하다 보니 넷플릭스는 소개글에 대해서도 A/B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출처)
A/B 테스트는 특정 유저군에겐 A, 나머지 유저군에겐 B를 보여주고 둘 중 어떤 것이 더 효과가 좋은지 실험하는 방식이다.
넷플릭스의 채용공고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소개글 쓰는 사람을 모집하는 공고에서 A/B 테스트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그렇다면 A/B 테스트로 살아남은 영화 소개글은 테스트를 아예 거치지 않은 소개글과 어떻게 다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같은 영화(932개), 드라마(203개)를 소개하는 넷플릭스의 글과 네이버의 글을 비교해 보았다. 참고로 네이버의 소개글은 주로 영화사, 드라마 제작사가 제공한다고 한다. [Github]
넷플릭스는 ‘나서다’, ‘지키다’와 같은 동사를 네이버보다 많이 사용하며 인물을 주체적으로 표현했다. 반면 네이버는 같은 영화 내용을 묘사할 때 호출 또는 명령을 ‘받는다’라고 표현하거나 인물의 행동보다는 사건에 주목하여 어떠한 사건이 ‘시작된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네이버 소개글은 인물의 행동을 표현할 때도 피동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넷플릭스보다 인물을 수동적으로 그려냈다.
넷플릭스는 영화 ‘다빈치 코드(2006)’를 주인공이 속임수를 ‘해결하러 나선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네이버는 주인공이 ‘호출을 받는다’는 수동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살해되고, 하버드대 교수와 암호 해독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둘러싼 난해한 속임수를 해결하러 나선다.”
“특별강연을 위해 파리에 체류 중이던 하버드대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은 깊은 밤 급박한 호출을 받는다.”
이처럼 호출을 ‘받다’라는 표현 외에도 네이버는 인물의 행동보다 사건에 집중하여 모험, 혈투 등이 ‘시작되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노아의 방주: 남겨진 녀석들(2015)’의 소개글에서 넷플릭스는 인물이 모험에 ‘나선다’고 표현하지만, 네이버는 ‘여정이 시작된다’고 표현한다.
“노아의 방주에서 밀항을 시도한 어설픈 동물 두 마리는 끝까지 살아남아 보금자리를 찾기 위 한 힘겨운 모험에 나선다.”
“대홍수로 물은 점점 차오르고, 남겨진 녀석들의 방주를 타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는데...”
영화 ‘명량(2014)’의 소개글에서도 마찬가지로 넷플릭스는 주인공이 나라를 ‘지켜낸다’고 표현하지만, 네이버는 ‘전쟁이 시작된다’고 표현했다.
“이순신 장군은 불리한 상황에서 왜국의 대규모 함대를 죽음의 덫으로 유인하여 나라를 지켜낸다.”
“12척의 조선 vs 330척의 왜군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네이버는 넷플릭스보다 피동 표현을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어 지다’, ‘-게 되다’ 등의 피동 표현뿐만 아니라, 피동적 의미를 나타내는 동사 ‘당하다’도 더 많이 사용했다.
드라마 ‘슈퍼걸(2015)’의 넷플릭스 소개글은 주인공이 ‘수호자로 나선다’라고 표현했다. 반면 네이버는 인물이 지구로 ‘보내졌다’며 피동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사랑스러운’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인물의 영웅적 이미지를 약화했다.
“재난을 막기 위해 자신의 초능력과 정체를 드러낸 카라 댄버스. 슈퍼맨의 사촌이자 슈퍼걸로 알려진 그녀가 내셔널시티의 수호자로 나선다.”
“세상이 몰랐던 또 하나의 영웅. 슈퍼맨의 사촌이자 그를 지키기 위해 지구로 보내진 크립톤의 다른 생존자 '카라 조엘'. 슈퍼맨보다 강하고 슈퍼맨보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영웅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2015)’의 넷플릭스 소개글은 인물이 도시를 ‘지킨다’고 표현하여 인물의 주체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네이버는 ‘선택된’이라는 피동 표현을 사용했다.
“파리에 위기가 닥치자 레이디버그로 변신해 도시를 지키는 마리네뜨.”
“파리를 구하기 위해서 선택된 마리네뜨와 아드리앙!”
드라마 ‘호프 밸리(2014)’의 넷플릭스 소개글은 인물이 스스로 교사가 되길 선택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네이버는 인물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며 피동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넷플릭스의 ‘씩씩한’이라는 수식어도 네이버의 ‘젊은 여교사’와 주체성의 측면에서 비교되었다.
“1900년대 초, 안락한 상류층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캐나다 서부의 탄광촌에서 교사로 사는 삶을 택한 씩씩한 여성의 이야기.”
“젊은 여교사가 서부의 작은 탄광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넷플릭스는 명령형 종결어미와 의문형 종결어미, 대명사 ‘나’와 ‘우리’를 네이버보다 많이 사용했다. 이를 통해 등장인물에 이입한 문장, 등장인물이 할 법한 대사를 따옴표 없이 표현했다.
“레이 도노반을 찾아라!”
“이중 스파이를 찾아라!”
“복수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누가 왜 가뒀는지 비밀을 풀어라”
"이번 사건, 엄청난 스캔들의 냄새가 나는걸?”
“잠옷 입은 세 꼬마가 뭘 할 수 있냐고요?”
“난 결코 평범해질 수 없는 운명일까.”
넷플릭스는 ‘나’, ‘우리’ 등의 1인칭 대명사도 빈번하게 사용했다. 네이버는 같은 인물을 이름과 3인칭 대명사로 표현하거나, ‘자신’ 또는 일반 명사로 표현했다.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2018)’의 넷플릭스 소개글은 주인공의 독백처럼 표현되었다.
“새 얼굴이면 새 삶이 펼쳐질 줄 알았건만! 못생겼다는 놀림에서 해방되려 성형 수술을 했지만, 이젠 자연 미인이 아니라 조롱받는다. 난 결코 평범해질 수 없는 운명일까. 스무 살 청춘의 설상가상 외모 트라우마 탈출기, 지금 시작됩니다!”
하지만 네이버에선 주인공이 ‘여자’라는 일반 명사와 ‘미래’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었다.
“어릴 적부터 '못생김'으로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성형수술로 새 삶을 얻을 줄 알았던 여자 '미래'가 대학 입학 후 꿈꿔왔던 것과는 다른 캠퍼스 라이프를 겪게 되면서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예측불허 내적 성장 드라마”
영화 ‘뉴가이(2002)’의 넷플릭스 소개글에서도 ‘나’로 표현된 주인공이 네이버에서는 이름과 인칭대명사로 표현되었다.
“한번 왕따는 영원한 왕따? 학교의 유명한 찌질 지존이 '나쁜 남자 되는 법'을 배우고 전학을 간다. 후훗, 나 이제 학교 인기남 맞지? 당연하지, 정체만 들키지 않으면 돼.”
“이제 길 해리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학교에 나타난 디지. 그는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짱을 때려눕히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넷플릭스는 ‘우리’도 많이 사용했는데, 같은 인물들을 표현할 때 네이버는 일반 명사를 사용했다. 넷플릭스가 ‘우리’로 표현한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2016)’의 주인공들을 네이버는 ‘학생’이라는 일반 명사로 표현했다.
“학생이 죽은 채 발견된다. 진실을 요구하는 아이들과 덮으려는 어른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참다못한 학생들이 직접 재판을 연다. 왜 죽었는지 우리가 밝혀내면 되잖아요!”
“크리스마스에 벌어진 동급생의 추락사에 얽힌 진실을 찾기 위해 나선 학생들의 이야기”
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실드(2013)’의 넷플릭스 소개글이 ‘우리’로 표현한 주인공들도 네이버에서는 ‘요원’이라는 일반 명사로 표현되었다.
“《마블 어벤저스》의 필 콜슨 요원이 돌아왔다! 뉴욕 사건 이후 콜슨 요원을 중심으로 탄생한 지구 최강의 평화 유지 조직. 인류를 위협하는 이상한 사건들, 우리가 접수한다.”
“비밀 기관 S.H.I.E.L.D. 와 그곳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의 이야기”
넷플릭스는 네이버보다 동사를, 네이버는 넷플릭스보다 일반 부사와 형용사를 평균적으로 더 많이 사용했다. 또한, 보조용언 ‘있-’을 사용한 글은 넷플릭스보다 네이버에 더 많았다. 네이버는 ‘가지다’라는 동사를 통해 인물의 특징을 직접 묘사한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넷플릭스는 사건의 전개를 중심으로 묘사하는 서사적 문체를, 네이버는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의 특징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묘사적 문체를 사용한다고 분석할 수 있다(참고).
넷플릭스는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3)’을 인물의 행동 위주로 묘사했다.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택한 14살 소녀. 엄마는 괜찮은 척 일상을 이어가고, 언니는 진실을 알고 싶다. 엇갈리는 진술과 숨겨진 비밀. 소녀의 죽음 앞에 무죄인 자 누구인가.”
반면 네이버는 인물의 특징, 인물이 처한 상황을 형용사와 일반부사를 통해 묘사했다. ‘착하다’, ‘살갑다’, ‘밝다’ 등의 형용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나타냈고 ‘갑자기’, ‘우연히’ 등의 일반부사를 통해 상황의 전환을 표현했다.
“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언제나 주책맞을 정도로 쿨하고 당당한 엄마 현숙. 남의 일엔 관심 없고, 가족 일에도 무덤덤한 시크한 성격의 언니 만지. 그런 엄마와 언니에게 언제나 착하고 살갑던 막내 천지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세 가족 중 가장 밝 고 웃음 많던 막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현숙과 만지는 당황 하지만, 씩씩한 현숙은 만지와 함께 천지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천지의 친구들을 만난 만 지는 가족들이 몰랐던 숨겨진 다른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에 천지와 가장 절친했던 화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무 말 없이 떠난 동생의 비밀을 찾던 만지는 빨간 털실 속 천지가 남기 고 간 메시지가 있음을 알게 되는데...”
이러한 경향은 드라마 ‘보고 싶다(2012)’의 소개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인물의 행동을 위주로 묘사한 반면, 네이버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형용사로 묘사했다.
“정우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수연과 친구가 되기로 한다. 한편 정우와 수연은 불난 집에 서 남자아이를 구한다.”
“열다섯, 가슴 설렌 첫사랑의 기억을 송두리째 앗아간 쓰라린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두 남녀의 숨바꼭질 같은 사랑이야기를 그린 정통 멜로드라마”
네이버는 보조용언 ‘있-’을 통해 상황을 묘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에서 가장 넓은 주인 알래스카의 울퉁불퉁한 해안에는 신기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아름다운 섬마을 브룸스타운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자동차들이 살고 있어요.”
“밥줄도 꿈줄도 어느 하나 제대로 타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고 있다.”
“크라켄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반신반인 ‘페르세우스(샘 워싱턴)’는 한적한 마을의 어부이자 10살 된 아들의 아버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8년째 접어든 해, 테헤란의 한 아파트에서는 폭격을 피해 주민들이 한 집 두 집 떠나고, 어느 모녀만이 남아 있다.”
네이버는 동사 ‘가지다’를 통해 인물의 특징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얼어붙은 심장을 가진 백발마녀”
“숨겨진 비밀들을 가진 사람들”
“전혀 다른 삶의 방식, 가치관, 매력을 가진 두 여자”
“특수 능력을 가진 청춘들”
“강한 영적 기운을 가진 영매 홍서정”
정리해 보면,
넷플릭스는 인물을 주체적으로 그리며, 인물에 이입한 문장을 많이 사용하고, 사건의 전개에 집중하는 문체를 사용한다.
네이버는 인물을 수동적으로 그리며, 인물을 3인칭으로 표현하여 거리를 두고,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의 특징에 더 집중하는 문체를 사용한다.
넷플릭스가 A/B 테스트를 진행한 두 소개글을 비교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넷플릭스는 소개글을 읽은 유저가 당장 그 영화를 재생하기에 유리한 문체를 사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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