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Yeouul May 10. 2023

호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남기

나의 경력을 풀어보자면 간결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일단 나는 현재 호주 멜버른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남기 위해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며 나만의 경력을 쌓고 있다.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계속
반복되는 시작 루프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이전에 나는 하나에 집중한다는 게 조금 어려웠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도전을 즐기는 성격이기에 안주하고 사는 삶에 지루함과 불안함을 느꼈다. 기회가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잡고 싶었고 뭐든지 경험하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하며 매 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열정적인 삶은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차곡차곡 쌓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집을 지으려면 재료와 기술, 시간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현란한 재료만 여기저기서 가져오고 집을 완성하는 능력은 끝내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결정적인 나의 문제점은 결국 하고 싶은 게 있었으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수줍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호주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나의 일러스트는 이미 교수님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대로 판매해도 된다고 격려받았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영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호주에서 경쟁하며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 핑계를 만들며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때가 2017년이었다. 이런 나의 마음가짐은 목표에 미미하게 미치는 경험으로만 경력을 채우게 만들었다. 경험은 당연히 삶에 보탬이 되지만 나의 최종 목표에 더 도움이 되는 경험으로 이를 채울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저 쉬지 않고 열심히 산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정적인 나의 문제점은 결국 하고 싶은 게
있었으면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수줍은 자신감 때문이었다.





2018년에 나는 호주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모국으로 돌아가니 호주에 있을 때보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종로에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이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나는 게을렀고 능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호주에 있다가 한국에 오니 한국 시장에 대한 지식도 너무 없었고 결국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삽질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큰 웅덩이를 만들어 내듯이 1년간 스튜디오를 하며 나는 강사로서 일러스트레이로서 많은 경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시작하려는 찰나 나는 결혼하면서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2020년 코로나로 전 세계가 도시 봉쇄에 들어가고 나는 호주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미술 유튜브를 시작했지만, 큰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2021년 나는 개인 사정으로 1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아무것도 할 게 없었던 호주에 있다가 한국에 오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나의 열정을 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1년 동안 잠시 머문 한국에서 나는 책 두 권을 출간하고 북페어와 전시 등 다양한 행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다시 남편의 곁인 호주로 돌아왔고 바쁘게 활동했던 한국에서의 삶이 차차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와 남편은 호주 이민을 결정하고 왔기 때문에 나도 이제는 한국에서의 미련을 버리고 정신 차리고 호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해야 했다. 일단 한국에서 내가 작업하던 물건을 다 옮겨야 했다. 한국에서 내가 열심히 살아온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호주로 가져왔다.





일단 첫 번째로 호주에서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며 나의 일러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봐야 했다. 나는 호주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호주 랜드마크 일러스트를 그렸기 때문에 호주 사람들에게 나의 작품은 반감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알록달록한 색이 입혀진 나의 일러스트는 호주 마켓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



이 마켓을 계기로 보완해야 할 점을 찾을 수 있었고 그다음 단계를 밟아 갈 자신감과 용기 또한 얻었다. 다음은 이제 입점이다. 호주에는 아티스트 작품을 모아놓은 편집샵이 있는데 몇 군데 입점 문의를 해보았다. 작품을 선별하는 데에 까다로운 곳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메일을 보낸 모든 곳에서 긍정적인 연락을 받아 5월부터 입점하기로 계약을 완료하였다.



작가들에게 삶은 항상 진행형이다.
직급도 없고 정해진 연봉도 없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다.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은
지루하진 않지만 불안하긴 하다.
이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간절함만이 유일하다.





이제 다음은 온라인샵 오픈이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호주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연구해 본 결과 10명 중의 9명은 *Etsy 혹은 개인 온라인 샵이 있었다. 온라인 샵이 없으면 어디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말도 못 내밀 것 같았다. 개인 온라인 샵보다는 당장 물품 하나라도 등록할 수 있는 Etsy를 시작하기로 했다.


*Etsy: 엣시는 핸드메이드 물건과 사진, 그림, 빈티지 제품 등을 판매할 수 있는 사이트이다. 약 150여 개 국가에서 240만 명의 유저들이 엣시를 이용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Etsy에 제품 등록하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이전에 미리 촬영한 제품 사진도 있었기에 빠르고 간편하게 5개의 리스트를 등록하였다. 아직 등록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현재까지 주문이 없어 불안한 상태이다. 하루빨리 주문이 한 개라도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호주 편집샵에 입점 계약도 완료했고 Etsy 샵도 오픈했다. 그리고 5월 말 아티스트 마켓 참가도 앞두고 있다.





사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계속 한국에 있었으면 지금쯤 자리를 잡고 있었을 텐데.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지금쯤 호주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을 텐데. 한국과 호주를 왔다 갔다 하며 뭐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계속 반복되는 시작 루프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내가 호주에 있어도 온라인이나 책 출간을 통해 한국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호주에서 지금 이렇게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내가 그동안 한국에서 닦아놓은 나의 경험과 경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남기는 여전히 도전 중이다. 작가들에게 삶은 항상 진행형이다. 직급도 없고 정해진 연봉도 없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다.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은 지루하진 않지만 불안하긴 하다. 이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열정과 간절함만이 유일하다.



이전에 나는 언젠가는 일러스트를 판매하는 삶이 주수입이 되어 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다르다. 당장 이렇게 살고 싶다. 막연하게 정한 언젠가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앞으로는 더 이상 경험으로만 내 삶을 채우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람은 간절함이 절정에 다다르면 어떻게든 에너지를 폭발하게 되어있다. 나도 열정과 간절함으로 내가 원하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린다면 언젠가는 내가 꿈꾸던 삶에 다다르리라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현재 간절한 건 무엇인가요?

혹은 굉장히 간절했던 적이 언제인가요?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Instagram: @yeouulart@yeouul_illustrator

Youtube: 여놀자(yeonolja)여울여울

Website: https://yeouul.creatorlink.net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 아티스트 마켓 참가 후기, 한국과 차이점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