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여운 Jan 10. 2021

<프롤로그> 내가 인도 북쪽으로 간 이유

긴 여행의 시작 - 인도


"나는 그냥 마날리로 갈래. 2주 뒤 출국일에 공항에서 다시 보자"


인도에 도착한 지 몇 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던진 내 발언에 함께 온 일행은 당황해했고, 맥주 한 모금 이후 침묵은 오래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그들은 만류했지만 내 발걸음은 이미 북쪽으로 향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곳으로.


그 일이 발생하기 1시간 전, 난생처음 인도에 도착한 우린 자기 택시를 타라는 무수한 손에 이끌려 다녔다. 능지처참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기사들은 자기 택시에 태우겠다며 큰 소리로 싸우기까지 했다. 죄지은 건 없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우리를 불편하게만 했다.


'공항에서 사기당하지 않는 법'을 달달 외우다시피 한 덕분에 택시 기사가 이끄는 엉뚱한 숙소로 가진 않았지만 "웰컴 인디아! 유 해피? 아임 해피!'라며 유쾌하게 택시 안 분위기를 이끌던 기사는 도착하자마자 택시비보다 많은 '팁'을 요구하며 우릴 닦달했다. 하찮은 자존심 대결로 생긴 소란은 호기심 많은 거리의 수많은 인도인들을 불러 모았고 우릴 잡아채는 시커먼 손길과 알아들을 수 없는 높은 데시벨로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에 멘탈은 요단강을 건넜다.


겨우 짐을 풀고 숙소 루프탑에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올라갔는데 이게 웬 걸. 한국인 4명이 서로 껴안고 울고 있다. 인도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배운다던데 도착하자마자 벌써 '노'와 '애'를 볼 줄이야. 사연은 이랬다. 두 달 동안 라다크 지역의 '레(Leh)'를 함께 여행했는데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이란 거였다. 그중에서 리더로 보이는 형은 갑자기 리시케시에서 샀다는 기타를 꺼냈고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다들 눈물을 흘렸고 다음을 기약했다.


일행들은 연달아 겪은 '분노'를 수습하느라 공허한 델리 밤하늘만 쳐다만 봤지 그쪽 테이블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난 달랐다.

'낭만적이다....'


적막을 깨고 옆 테이블로 가서 용기 내 물었다.

"거기 어떻게 가요?"

아무런 정보가 없던 나에게 새롭게 업데이트된 정보 하나는

'마날리로 가라'였다. 밤하늘에 별은 쏟아지고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 설산이 한없이 투명한 곳이라고 했다. 더 이상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즉흥적인' 인도 여행은 시작됐다.

돌이켜 보면 인도가 준 선물이었다고 볼 수밖에.


2009년 인도 여행의 시작. 촌스럽다.


다음 날, 빠하르 간즈에서 허름한 손목시계를 하나 샀고, 일행들과는 2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메일이 아니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제 어젯밤 수첩에 적어놨던 '마날리'란 곳에 가야 했다. 스스로의 결정으로 혼자가 됐다. 2주짜리 관광 온 대학생 배낭은 한없이 작았고 돈도 없었다. 그럼에도 심장은 뛰기 시작했고 걸음은 힘찼다.


그 버스를 타기 전까지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