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두번의 이별

우리만의 시그니처 인사세트

by 따듯여유

“살아계시는 동안 부모님께 표현을 많이 하세요. 나중에 후회해요”

그건 알겠어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왜 이렇게 입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이로부터 매일 두 번 씩, 등원할 때 한번, 잠자리에 들때 한번.

아이와 이별하면서 나누는 ‘우리만의 시그니처 인사세트’가 시작된다.




정서적 금수저라고 자부할 수 있을만큼 부모님께서는 한결같이 따뜻하게 마음을 채우고 보듬어 주셨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었다. 그럼에도 초중고생 시절은 물론이고 공부한다고 20대 후반까지 밥벌이도 못하던 백수 시절까지 자식 둘 뒷바라지 하시던 40대, 50대 우리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짠하고 애틋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코 끝이 찡해진다.

어쩌면 어릴 때 부터 지니게 된 이런 마음으로 비록 대단치는 않지만, ‘엄마, 아빠를 위한 버켓리스트’를 하나씩 이루어 가며 소소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딱 하나 안 되는 것이 있다.


“사.랑.해.요”


표현을 하고 싶은데 이렇게 한마디 전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해서인가. 그렇다고 이 이상의 단어는 생각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내가 부모님께 들어보지를 못했다. 이런 표현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익숙치 않은 시절이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그까짓 말 한마디가 중요한가. 마음이 중요하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도 내 아이부터는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 게다가 보아하니 암만 사랑을 베풀고 표현해도 애미를 닮아 그런지 표현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내 입 트이는 것은 차차 해결하고, 우리 OO부터 입을 트여보자.

유치원에 가면서 제안한다.


“OO아, 우리 헤어질 때 규칙 하나 만들까?”

“뭔데?"

“엄마가 ‘사랑하는 우리 OO아’ 하면, 우리 OO은 ‘사랑하는 우리 엄마’ 하면서 인사하고 헤어지는거야. 엄마가 먼저 해볼게. ‘사랑하는 우리 OO아’”

“으윽. 안하고 싶은데”

“한번만 해보자. 이렇게 하면 엄마가 에너지가 생길 것 같아서 그래. 응응? 다시, ‘사랑하는 우리 OO아’”

“스릉흐는 으르 음”

“에이 제대로 좀 해주라. 기운이 나다 없어지겠어”

“사랑하는 우리 엄.마?”

“오 기운이 불끈불끈 나는 것 같아. 우리 OO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고 와. 사랑해”

“엄마 안녕. 이따 보자아”




아쉽다. 사랑해 한번 해주지.

첫 술에 배부르랴. 그래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햇살은 더 따사롭고, 출근길까지 밝아지는 듯 화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우리 OO도 유치원에서 그랬기를.


퇴근 후.

“OO아 아까 우리 그렇게 인사하니깐 엄마가 회사갈 때 정말 행복했어. 우리 OO이는 어땠어”

“좋았어”

“엄마가 아무래도 밤에 잘때도 보고 싶을 것 같으니깐 또 그렇게 인사를 해야겠어”

표정을 보니 처음 시작과 다르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오히려 기대하는 것 같다.


잠자리독서 후 굿나잇 인사타임.

“사랑하는 우리 OO아”

“사랑하는 우리 엄마”

“오늘도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잘자”

“응. 타랑해”




이렇게 주말에는 한번, 주중에는 하루 두 번의 이별인사를 나눈지, 벌써 4년이 지나고 있다.

“사랑하는 우리 OO아” & “사랑하는 우리 엄마” 우리의 시그니처 인사셋트를 서로의 귓가에 담은 횟수, 어림잡아 계산하면 벌써 2,000회는 훌쩍 넘을 것 같다.


가끔 까먹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 귀요미가 너스레를 떤다. “엄마 이제 인사 안하려고?

“아 맞다맞다. 사랑하는 우리 OO아”

“사랑하는 우리 엄마”

이쯤 해서는 너가 먼저 해보면 안되겠니? 싶다가도 그래도 이게 어디랴.


“사랑해”도 일상 인사가 되었다. 이제는 +α(플러스 알파)로 뽀뽀까지.

오늘도 현관문을 열어놓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아들에게 살짝 외친다.

“사랑하는 우리 OO아”

“사랑하는 우리 엄마”

“오늘도 잘 다녀와. 안녕. 사랑해. 아 맞다 뽀뽀 안했다”

“맞네. 엄마 이리로 와”

“엄마 지금 거기로 못나가. OO가 여기로 와야겠어”


쿵쾅쾅 발걸음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쪽 하고 사라진다.

이 녀석. 너도 이게 좋구나. 이거 안했으면 어쩔 뻔 했니.




이거 안했으면 어쩔 뻔 했나 싶은 예상하지 못했던 보너스 효과. 매일 두 번의 리셋 기회.

매년 새해에만 의지만땅, 연말에 반성을 반복하던 1년의 마인드 리셋 주기가 하루 2회, 평균 12시간으로 급격히 단축된 것이다.

아무리 아이가 답답해도, 아이한테 따끔히 혼을 낼 일이 생겨도.

아이가 엄마에게 섭섭하고 속상한 일이 생겨도.

우리의 루틴이 된 이별인사 셋트는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인사에 세상 다정한 기운을 담으려면 그 전에 서로의 마음덩어리를 깔끔히 풀어내는 미션을 수행해야만 한다. 속히 털어내야 한다.


이따 인사하고 자야하는데.

어떻게 풀지.

내가 왜 그랬을까.


불안했던, 걱정했던 마음을 마주하고 나의 미숙한 행동을 반성한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이렇게 하면 기분 좋게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때마다 생각한다. 육아는 예술이로다. 어렵다.

짧아진 리셋 주기와 함께 반성과 사과 횟수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결국 “사랑해요” 말 한마디 듣고자 시작한 루틴이 엄마력 레벨이 상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어쩌다 얻어걸린 이 소중한 루틴, 우리의 시그니처 인사세트.

여전히 엄마력 레벨 하락, 상승을 반복하고 있지만 이 마저도 없었다면 지금은 아마 바닥을 치는 하락장이지 않을까.


얼떨결에 따라와 준, 아주 조금은 괜찮은 엄마로 만들어주고 있는 우리 사랑하는 OO가 새삼 고맙다.

곧 다가올 사춘기를 앞두고 이런 추억을 언제까지 쌓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아쉽다.

일단 아묻따 3,000회 달성을 향해 이쁨 받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그 다음 사춘기 맞춤형 시그니처 인사세트를 고민해 보기로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