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그러더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고.
그런데 꺾였으면 어떡할 건데?
이미 꺾였다면.
글에 대한 마음이 꺾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글을 쓰는 직업’에 대한 마음.
이제껏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스물다섯부터 잡지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영화제를 전전하며 보도자료를 썼다. 계약직이라도 상관없었다. 쓸 수만 있다면 그게 어디든. 대학 조교로 근무하면서 각종 공문서와 안내서를 쓰기도 했고, 11번가에서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며 커리어를 쌓기도 했다.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에세이도 출간했다. 가장 최근에는 기자로 일했고(비록 한 달이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커리어의 맥락을 이어왔다. 어떻게든 쓰는 사람으로 발견되고 싶었으니까. 그것이 곧 내 정체성이 되기를 바랐으니까.
그런데 기자에서 짤린 후 마음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글을 쓰는 직장을 찾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다시 보도자료를 쓰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광고대행사는 많고, 그곳에는 언론홍보직이 필요하니까. 수요는 많다고, 다시 찾으면 그만이라고.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확신이 없어졌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동시에 떨어졌다. 내가 과연 글로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이 직업이 내게 정말 합당한 직장인가? 내 인생에 허락된 직장이 맞을까? 정말 글에 재능이 있었다면 이렇게 계약직만 전전하며 살았을까?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고 무엇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더 이상 글을 쓰는 직장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소기업에서 경리를 하든, 교회에서 봉사자로 살든, 카페 직원으로 일하며 살든 상관없다고.
왜냐하면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였는데도 계속 하는 마음이니까.
방송인 박명수가 그러더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따위가 아니라, 꺾였는데도 계속 하는 마음이라고, 나는 그 장면을 고스란히 캡처해 휴대폰 갤러리 속 고이 저장해놓는다.
이전에도 나는 마음이 꺾인 적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기 전,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가 그랬다. 그때 나는 이미 꺾였다. 나 같은 건 아무리 노력해도 책을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글을 써봤자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 써놓은 글을 발행하면서까지 회의에 잠겼다. 나는 왜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이렇게 열심히 쓸까. 이번에도 똑같겠지 뭐. 이런 글 쓴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썼다. 마음이 꺾인 채로 계속 썼다. 엄청난 회의감과 좌절감과 나는 안 된다는 무력감 속에서도 나는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마음이 폐허가 된 상태에서도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마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쓰는 것밖에 없었으므로 썼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쓰고 쓰고 썼고 드디어 출간에 성공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꺾인 마음을 가지고 계속 쓰려 한다. 글을 쓰는 직업에 대한 마음은 꺾였음에도. 어떤 직업을 가지든, 어떤 길을 가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나는 언제나 하얀 백지장을 키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을 것이다. 그러다가 너무 힘이 들면 잠깐 멈출 수는 있겠지. 무력감과 탈력감에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서 떼는 시기도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한 달 후, 육 개월 후, 어쩌면 일 년 뒤 나는 다시금 카페에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계속 하는 마음이니까, 이번에도 꺾였는데도 한 번 해보지 뭐. 그러다 좋은 일이 생기면 떙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글을 계속 쓰면 되는 거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다. 그렇게 사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고 해서 글을 그만 쓸 이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