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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Feb 06. 2021

내 묘비명은 이렇게 적어주라.

그래, 아무래도 이 문장이 가장 적절할 거 같아.


몇 년 전 <집사부일체> 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자신의 묘비명을 적는 것을 본 적 있다. ‘행복하게 자기 인생을 살다 간 김00 여기 잠들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덕분에 후회 없이 살다갑니다.’ 모두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신중히 적어냈다.


그 중 개그맨 양세형의 것이 유독 인상 깊었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을 이렇게 정했다. ‘그런 표정으로 서 있지 말고 옆에 풀이나 뽑아라. 내 마지막 계획이었다.’ 유머러스한 문장인데, 정작 그것을 적는 양세형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결국 그는 문장을 차마 다 읽지 못하고 오열했다.


진심, 이었을 것이다. 그는 진심으로 남은 이들에게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마지막까지 피식,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사람으로. 아마 사람들은 저 묘비명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침울해하다 피식, 웃으며 ‘맞아 양세형은 이런 사람이었지.’하고 생각할 거 같다. 개그맨 양세형으로서, 인간 양세형으로서 이보다 더 어울리는 묘비명이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 묘비에 어떤 말을 새길까. 생각해봤더니 몇 초 내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떠오른 그 문장은 ‘그래도, 또 와줄 거지?’였다. 그래, 아무래도 나는 내 묘비에 이렇게 적어두어야겠다. 이 문장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아.



평소에 지인들에게 연락을 잘 하지 않는다. 연락이 와도 나중에 답해야지, 하다가 그만 깜빡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카톡이나 메시지가 오면 평균 2~3일 뒤에 답을 하곤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친구가 ‘김예란 답장 속도는 조선시대 파발수준’이라고 말했으랴. 그렇다고 먼저 안부를 묻는 법도 없다. 누군가 문득 떠오르거나 안부가 궁금해져도 그냥 계속 궁금한 채로 지낸다(미련스럽게!). 아아, 연락. 그것은 나의 크나큰 마음의 짐이요 딜레마로다.      


연락은 내게 단순히 귀찮음의 영역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활동에 속한다. 전화 한통, 카톡 한 개에도 정성을 들이고 신경을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텐션이 필요하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약간의 피로감을 수반한다. 그게 아무리 친한 친구일지라도(혼자 있을 때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텐션 차이가 큰 사람들은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종종 마음속으로만 ‘보고 싶다, 잘 지내고 있을까?’ ‘요즘 힘든 일은 없나? 마지막으로 봤을 때 좀 안 좋아보였는데’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을 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살갑게 연락 한번을 하지 않는 나에게 분명 서운함을 느끼는 이들도 있으리라. 어쩌면 야속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 약간의 멋쩍음을 담아 ‘그래도, 또 와줄 거지?’ 하고 조금은 능청맞고 쑥스럽게 말하고 싶다. 마음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실은 항상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전에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나는 네가 또 보고 싶어. 네 목소리가 또  싶어. 그러니까 또 와줄 거지?, 하고. 


염치없지만 다시 나를 찾아달라고.

오래오래 기억해달라고.      


그렇게 묘비명을 생각하다가 나는 자연스레 내 현재의 행태를 돌아보게 되었다. 속으로만 생각할 뿐 표현하지 않는 나. 번번이 귀찮음과 피곤함에 뒤에 숨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미루는 나. 후에 그런 행동들을 크게 후회할 나에 대해서. 언젠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에서 ‘아끼는 마음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다지 소용이 없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사실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문장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쳐둔다. 흑, 슬프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내 행동을 반성하고 그 반성을 토대로 단점을 개선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그래서 최근에는 소중한 이들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 보고 싶다!’ 한 문장을 얼른 써서 메시지를 훅 보내버린다. 그런 식으로 오랫동안 끊어져있던 인연을 다시 이으려 노력한다. 훗날 나의 묘비명을 보고 ‘또 오긴 개뿔, 뻔뻔한 놈’이라고 여기지 않고 ‘으이그, 진짜 끝까지 김예란 답다.’라고 살짝 얄미워하다 마지못해 다시 찾아와줄 수 있도록. 아, 묘비명 생각해둔 덕분에 조금씩 사람이 되어가는 구나 예란아.     


그런데 이쯤 되니 다른 사람들의 묘비명도 슬슬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죽을 때 무슨 말을 남길까? 거기에는 어떤 마음들이 담겨 있으며 어떤 못다 한 말들이 녹아있을까? 그건 누구를 향하는 마음일까? 그 묘비명을 떠올리면서 현재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러니까 미래의 묘비명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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