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까부터 왜 그러는 거야?
왜 어머님이 서운해 하거나 민망해할 만한 말을 자꾸 하는 거야?
때는 바야흐로 2020년 8월 15일. 나는 친한 언니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일단 위 발화의 전말을 알기 위해서 그날의 점심으로 되돌아가보자. 그날은 춘천에 사는 언니가 부산으로 놀러 온 날이었다. 평소 우리엄마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언니를 위해, 엄마와 나는 에어컨 빵빵한 차를 대동하여 그녀를 풀코스로 모시기로 했다.
우리는 점심부터 디저트까지 맛집 코스를 직진으로 달리고, 부른 배를 꺼뜨리려 광안리로 향했다.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도 씽씽 타고 미지근한 바닷물에 발도 담갔다. 해질 무렵엔 겨우 꺼뜨린 배를 다시 채우러 식당에 들어갔다. 그때까진 무념무상, 마냥 해맑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간 틈을 타 언니가 내 쪽으로 얼굴을 바싹 붙인 채 낮게 읊조린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왜 자꾸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를 멋쩍게 만드느냐고.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언니를 쳐다보며, 내가...? 내가 그랬다고? 내가 엄마를 계속 나쁘게 이야기 했다고? 반문하자 언니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응, 네가. 나는 진심으로 깜짝 놀라며 이제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를 재빠르게 복기했다. 그랬더니, 어, 정말로 그러네. 정말로······ 내가 그랬네.
나는 유년시절 엄마가 나를 매섭게 몰아붙였던 얘기, 나를 비정상이라고 비난했던 얘기, 항상 남동생 편을 들어 나의 자존심을 뭉갰던 얘기. 또는 우리 집은 언제나 옷이며 물건들이 잡동사니처럼 쌓여 있으며, 엄마는 그런 집에 계속해서 새 물건을 들이거나 필요 없는 물품들은 미련스레 버리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렇게 나는 대화의 방향을 자꾸만 과거로, 과거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얼마나 서럽게 만들었는지, 내가 그 시절 얼마나 힘에 겨웠는지를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속에서 채 풀리지 못했던 울혈들을 무의식중에 뱉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행동을 인지한 후 꿀 먹은 벙어리처럼 벙쩌 있자, 언니는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도 아이 셋 키우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어? 더군다나 너 어렸을 때 폴란드에서 살았잖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어린 언니와 너를 돌보느라 얼마나 외롭고 힘에 부치셨겠냐고. 너희 아버지는 육아에 손도 대지 않고 딱히 위로나 공감 같은 것도 해주지 않는 분이시라며.
“예란아, 엄마도 피해자야.”
아버지 사업 망하고 나서 너도 힘들었겠지만, 엄마도 그 잔해의 피해자라고.
그날 밤, 나는 일기를 쓸 수가 없었다. 머리는 혼란하고 마음은 착잡했다. ‘엄마도 피해자’라고 말하던 언니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 앞에서 엄마의 흠을 떠벌리던 내 목소리가 겹쳤다. 마지막에 언니가 덧붙인 말도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 어머님 말에 더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주었던 거야” 아, 그러고 보니 그랬네. 엄마가 말을 할 때마다 언니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제스처를 취했었다. 어머님,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중간 중간 동조의 말도 해주었고. 그리고 우리엄마는 어땠더라. 우리 엄마는··· 계속 말을 했어.
늦은 나이에 막내를 낳아 홀로 아이를 돌보아야 했던 이야기, 그 무렵 아빠 사업이 망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굉장히 여유가 없었던 이야기,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업이 완전히 망해 파산신청을 하러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혼자 법정까지 갔던 이야기.
엄마는 남들 앞에서는 한 번도 한 적 없는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그래, 아이 셋 키우느라 엄마도 정말 힘들었어.”라고, 시선을 사선으론 내린 채 말했다. 힘들고 하기 싫은 일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늘 해맑게 말하던 사람이 그날은 자신도 힘들었다, 라고 말을 했어. 누군가 당신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니 마음속에 응어리져있던 말들을 술술 풀어냈던 것이다. 그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일기장 앞에서 많이 부끄러웠다. 타인의 말은 항상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내가, 엄마의 말은 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다니. 엄마의 단단하고 강인한 모습은 외면한 채 항상 약한 모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니. 동시에 엄마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다는 것을, 당신도 자신의 서사를 귀담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깨달았다.
내가 나의 서사를 이해받고 공감 받고 싶었던 것처럼 엄마에게도 그런 것이 필요했다. 내가 당신의 서사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주고, ‘그래, 엄마 그때 정말 많이 힘들었지. 이제껏 정말 수고 많았어.’ 인정해주길 엄마도 바라왔다고. 누군가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으로서. 남들은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지닌 한 개인으로서, 한 여자로서 그런 것을 바랐다고.
어디선가 ‘사람은 자신이 이해받을 때 가장 큰 행복과 안정감을 느낀다.’는 문장을 본 적 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그런데 왜 거기서 말하는 ‘사람’에는 ‘엄마’라는 존재도 포함된다는 것을 몰랐을까. ‘부모’라는 이름표를 단 존재들도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받아들여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왜 이제야.
나는 다시 펜을 들고 내 앞에 펼쳐진 백지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20년 8월 15일. 다은이 언니가 부산에 놀러온 날, 치즈 돈가스와 아메리카노와 당근케이크, 광안리 해변가, 저녁의 밀면, 그리고 “너 왜 자꾸 엄마가 서운해할만한 말을 하는 거야?”와 “아이 셋 키우느라 엄마도 정말 힘들었어.” 오늘의 부끄러움과 깨달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저 말을 하던 엄마의 표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한 단어 한 단어 꼭꼭 눌러 적었다. 후에 내가 엄마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날의 이야기를 언젠가 글로 풀어낼 수 있도록.
그리하여 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있는 지금, 나는 스물일곱의 해를 먹었고, 엄마의 말을 가만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중간에 말을 끊고 반박하거나 토를 달지 않고서. 여전히 안아주거나 등을 쓸어주며 엄마 정말 힘들었겠구나, 다정히 말해주는 낯간지러운 행동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래, 엄마 그때 정말 수고 많았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 그러면은 엄마는 피식, 웃으며 먹고 싶은 것을 말하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더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역시, 엄마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