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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Nov 01. 2019

생각을 덜어주는 가방

당신이 내게 준 작고 소중한 유산.

대학내일 [865호 – special]

단순하게 살아 단순하게. 쥐똥만한 머리 자꾸 굴리지 말고


엄마는 20살이 된 내게 자신이 쓰던 가죽가방을 건네며 말씀하셨다. 장난스런 어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뜻까지 가볍진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갑절은 더 복잡하게 생각해서 슬픔은 절망으로, 한 번의 실패는 구제불능으로 승화시켜버리는 내가 걱정되셨겠지. 그리고 이런 딸애가 단순하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가방을 주셨을 테다. 그러니까, 저 가방엔 엄마가 내게 물려주고 싶어 하던 ‘단순함의 미학’이 담겨있다.


 어렸을 적 우리가족은 폴란드에서 5년 정도 살았었다. 그 가방은 폴란드에 온지 한 달 정도 됐을 때 산 것인데, 당시 상황을 잠깐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엄마는 폴란드로 온 후 한동안 조금 울적해하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라에서 아직 콧물쟁이인 우리 두 자매를 키워야 했으니 말이다. 덤으로 남편은 늘 회사에서 밤늦게 돌아왔고. 아무리 우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지만 쓸쓸하고 답답했을 수밖에.


그렇게 폴란드의 겨울처럼 흐리고 음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엄마는 근처시내에서 우연히 그 가방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 어린 두 딸의 손을 이끌고 얼른 매장 안으로 들어섰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가격, 가격이 꽤 비쌌다.  인생살이 최대빈출, 시대불문의 애로사항, 자본 앞에서 엄마는 한눈에 반한 가방을 이리 매보고 저리 매보고. 손으로 한번 쓸었다가 킁킁 냄새도 맡았다가. 괜히 다른 가방들을 쓱 훑어보며 매장 안에서 꼼질거렸더랬다. 하지만 좋든 싫든 선택의 순간은 다가오는 법. 언니와 나는 엄마 다리에 엉겨 붙어 집에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고, 엄마는 결정을 해야 했다.     


들어올 때와 같은 모습으로 매장을 나설 것인가.

아니면,   

저 부드러운 갈색 빛이 감도는 물체에 자신의 옆구리 한쪽을 내어줄 것인가.      


결정의 순간,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 선택의 갈림길에서 ‘단순함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기로 했다 

자, 어디보자. 그러니까      


첫 번째, 이 어여쁜 가방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것이고 
두 번째, 가방을 산다고 해서 당장의 살림살이에 큰 구멍이 나진 않을 테며
하이라이트 세 번째, 지금의 잿빛 같은 일상에 가방과 같은 주홍빛 색채가 생기리라.
고로,

결재


작동회로는 단순했고, 실행은 빨랐으며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후로 엄마는 하루 중 틈이 날 때마다 가방을 매고 동네를 걸었으며, 골목 사이의 작은 길들을 누볐다. 새 가죽가방을 단정히 어깨에 맨 채 찬찬히 걷고 있노라면 이국의 풍취를 느끼는 오롯한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그렇게 가방은 엄마의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었고, 이후로도 그녀와 17년을 함께하며 때에 따라 주인의 흥취를 돋우고 낭만을 더했다.   


엄마는 뭐든 복잡하게 생각하는 내게 이 일화를 종종 들려주었다. 상황이 암울할지라도 단순하게 행하면 간단하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예전엔 ‘그건 엄마나 그렇지!’라며 들은 체 만 체 했는데 (엄마미안), 어른이 될수록 엄마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인생에서 자연재해 같은 불행들을 몇 번 만나고 나서부터 그랬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곱씹으며 생각 속에서 시름시름 앓아갔다. 상황을 해결하려 구태여 이것저것 따지고 행동에 신중을 가했지만 그 끝은 결국 자기비관이었다. 어느새 나를 둘러싼 불행은 철옹성같이 단단해졌고, 나는 그걸 보느라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었던 행복을 몽땅 놓쳐버렸다. 

돌이켜보면 그때 엄마말대로 조금 더 단순해졌더라면, 훨씬 덜 불행했을 텐데.

     


그제야 엄마가 왜 가방얘기를 유독 나에게만 그리 많이 하셨는지, 왜 언니가 아닌 나에게 가방을 주셨는지 알 것 같았다. 언니는 엄마를 닮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법을 일찍부터 알았고, 나는 그토록 많은 생각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품어주지 못했다. 엄마에게 그런 둘째딸은 답답하면서도 못내 안타까운, 그래서 깨물면 항상 더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머리가 복잡해질 때면 내 방 벽면에 걸린 가방을 이따금씩 쳐다본다. 보면서 뭐 대단한 결심을 하는 건 아니다. 본다고 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고. 다만, 딸애가 스스로를 갉아먹는 걸 원치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괜히 기분이 뭉클해질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상념들이 잠시 끊어져서 배배꼬였던 생각들을 덜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까지는 아니지만 ‘소소하지만 내게 확실한 행복’ 정도는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훗날엔 소중한 사람들에게 단순해지라고 말하며 그들의 행복을 빌어줄 수도 있을 테다.

당신이 여태 내게 그래왔듯 말이다.      


그러니, 나는 계속 저 가방에게 내 공간 한편을 내어 줄 생각이다. 

사는 동안 그리하며 날마다 조금씩 당신을 닮아가야지.

그리고 언젠가는 내 곁에 없을 당신을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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