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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Dec 09. 2020

그 성과 그 결과, 그건 내가 잘해서였을까

상대가 알아봐 주었기에 가치가 ‘생긴’ 것들



자랑할 만한 성취와 결과, 타인의 인정과 칭찬, 긍정적인 평가와 시선.


그건 과연 내가 잘해서 얻은 것일까?    


이전에 그 질문이 내게 있었다면 암 그렇고말고, 하고 답했을 것이다. ‘운’이라는 외부적 요소를 제외하면 성과는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겠나. 내가 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잘했으니까,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었으니까 좋은 결과가 있었던 거겠지. 애초에 그의 유능함을 물리적 형태로 증명해주는 게 성과, 라는 것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그날 천천하고 선명한 눈빛을 가진 친구, S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나는 말이야, 어떤 사람이 내 작업물에 대해 좋게 평가하잖아? 그럼 그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그 가치를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니?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눈앞에 놓인 이 컵을 만들어서 공모전에서 수상했다고 치자. 그럼 그건 내가 ‘객관적’으로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평가자가 그 컵의 가치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안목과 감각, 취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거지.


·········세상에······. 그런 관점으로 생각할 수도 아니 그런 관점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는구나...!

친구가 제시한 시각, 아니 S가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과 삶의 태도는 내게 가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 그러네 참으로 그랬어. 내가 만든 커피가 누군가에게 훌륭하다는 평을 받았다면 그건 ‘객관적’으로 ‘절대적’으로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커피에 대한 조예가 있고 음료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미각을 가진 사람이 맛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상대의 미(味)적 취향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그 커피는 비로소 ‘훌륭해질 수’ 있었던 거야. 달리 말하면 커피에 문외한인 사람이 마셨다면 그저 ‘쓴물’에 불과했을 수도 있었단 말이지.      





물론, 타인의 재량과는 상관없는 성과와 결과도 있다. 예를 들면 정답과 오답으로 이루어진 오지선다의 세계. 정량적인 숫자와 점수로 능력을 수치화시켜 ‘한 줄 세우기’에 최적화된 토익이나 수능 같은 시험들. 하지만 세상은 단 한 개의 정답과 오직 그 정답을 위해 존재하는 무수한 오답들로 구성된 세계가 아니기에.      


현실에는 무심하고 배타적인 숫자들로 결코 환산될 수 없는 가치들이 지배적이다. 말하기, 글쓰기, 미술(심지어 입시미술도), 노래, 요리, 디자인, 편집능력 등···. 소위 우리가 능력이라고 칭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일정 수준의 선을 충족한다면(기본기와 필수 지식, 어느 정도의 감각과 완성도를 갖추었다면), 그에 대한 가치평가는 주체가 아닌 객체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독자 청자 평가자 감상자 채택자, 그것을 취하는 대상의 안목과 감각, 배경, 성향, 취향에 따라 어떤 가치가 얼마큼 부여될지 결정된다.     


능력이나 사회적 쓸모뿐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성향과 성격, 특성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가치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어떤 것을 두세 번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누군가는 또는 어떤 회사에서는 이를 ‘꼼꼼하다’고 평하며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일처리를 늦추는 요인이라며 답답해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니 실은 나의 장점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처음부터 장점이 아니었으며 강점도 원래부터 강점이 아니었음을. 그저 ‘나’를 구성하는 여러 속성 중 하나였을 뿐인데, 누군가 그것을 장점으로(강점으로) ‘인식’해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장점으로 거듭날 수 있었음을.      




이런 관점으로 생각하면 이전엔 분명 ‘나’만 존재했던 상황 속에 상대방의 존재도 포함되게 된다. 긍정적인 성과와 칭찬 이면에 내 노력과 실력뿐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도 커다랗게 자리하게 된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닐 수도 있었던 혹은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슥ㅡ 지나칠 수도 있었던 나의 가치를, 쏟아 부은 땀방울과 시간의 가치를 알아봐주어 고맙노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세상과 사람을 폭넓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 S, 항상 내가 쓴 글과 나의 내면의 가치를 쏙쏙 알아봐주는 친애하는 나의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더불어 자리를 빌려 끝까지 글을 읽어주고 기꺼이 ‘좋음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독자 분들에게도. 항상 고맙다고, 가치를 알아봐주고 그보다 더한 가치를 부여해주어 감사하다고. 그러니까 “오늘도 고맙습니다” 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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