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0
밤에는 불안하고 두려워서 잠이 안 온다.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고 사는 게 두렵기만 하다.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지옥이다. 평생 또 다른 지옥문을 열면서 살아가겠지 평생 평생.
작년 여름,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이때는 정신의학과를 다니기 전으로, 우울증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이었다. 자존감과 함께 생에 대한 의지도 한없이 저물어 갔다. 나는 일기장을 언니에게 보여주며 나 이때 진짜 힘들었나봐, 역시 정신의학과를 다니길 잘했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그렇네, 이로써 너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산 증인이 된 거야” 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말에 그렇구나, 정말로 그래. 하고 수긍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고 실제로 죽으려고 했었지만 나는 지금 멀쩡히 살아있다.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 우울증이 심했을 무렵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고 이 지옥이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치료를 받으면서 내 삶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했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구덩이 속에서 지냈던 시간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조용히, 서서히 종결되었다.
‘이것 또한 다 지나간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혀 깨우치니 그 뜻이 퍽 단단하게 다가온다. 형체 없이 부유하던 낱말이 형상을 가지고 또렷이 감각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이 모든 게 결국은 어떻게든 지나갈 것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또 새까맣게 잊고 지금의 고통이 영원하리라 착각하며 빠져나오기 힘든 고통의 굴레 속에서 혼자 자책하고 괴로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기쁘고 행복한 일은 이토록 빨리 지나가며 한 ‘순간’임을 당연시하는데, 그에 비해 고통은 계속 거기에 고여 있으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리라 믿는다. 하지만 실은 그 어떤 것도 거기에 정지해있지 않다. 우리가 모르는 새에 조금씩. 조금씩 옅어지고 희석되어 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 그런 시절도 있었지 참. 하고 뒤돌아볼 수 있을 만큼 저 멀리로 멀어져있다.
그러니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산 증인으로서 말하건대, 다 지나간다. 지금은 힘들지라도 그 모든 게 영원하지 않으며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 행복과 불행 이 모든 게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지금 당장의 현실은 암울하고 죽을 것 같이 힘들지만, 심지어는 죽고 싶겠지만, 언젠가는, 어쩌면 한 달 후에는 당신은 다시 평범하게 일상을 이어가며 전과 같이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희희 거리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댈지도 모른다. 당신의 온 몸을 에워싸던 고통이 어느새 발 언저리에서 숨을 꺼뜨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삶을 그런 식으로 계속된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정지해 있지 않으며 이 귀한 시간, 또는 추한 시절을 안고 서서히 흘러간다. 어느 때에는 우리가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천천히, 또 다른 때에는 인지할 순간조차 없이 빠르게.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간다.
그러니 지금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다 지나간다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라고. 조금만 더 버티다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나에게도 그랬듯이 당신들에게도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