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란 May 18. 2021

우리가 빚을 내서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이유


솔직히, 빚을 내서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한다고,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도 대학시절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해외에 나가보라고 하지만, 굳이 빚을 내면서까지야. 하지만 그런 생각에 균열이 온 건 미래계획을 묻는 엄마에게 스스로 덜렁,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는 네덜란드에 가서 살 거야. 나이가 들면 거기에 정착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내 말에 엄마는 한쪽 눈썹을 슬쩍 올리며, 그래? 그럼 그래라~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나는 스스로의 대답에 놀라고 말았다. 네덜란드에 가서 살겠다고?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생각해보니 나는 언제부턴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줄곧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네덜란드에 가서 살겠다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노라고.


네덜란드는 자연환경과 음식, 풍토, 문화, 사상 등 모든 방면에서 한국과는 퍽 다르다. 끊임없이 소음과 공해를 만들어내며 무자비하게 달리는 차 대신 두 발을 느긋하게 움직이며 질서정연하게 나아가는 자전거로 도로가 차 있고, 미세먼지로 흐릿한 하늘대신 크로와상 같이 뭉글한 구름이 손에 잡힐 듯 낮게 떠다닌다.


아침 길가엔 고소하고 부드러운 크로와상 굽는 냄새가 잔잔히 배여 있고, 치즈와 요거트는 한국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맛과 풍미가 진하고 깊다. 오후 3~4시가 되면 사람들은 퇴근을 한 후 아직 해가지지 않은 하늘 아래 테라스에서 느긋이 담배를 피우거나 맥주를 마신다. 누구 하나 바쁘다는 듯 걸음을 보채지 않고, 계단이나 잔디에 아무렇지 않게 털썩털썩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떠먹는다.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돼 누구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며 24주까지 낙태가 허용되어 여성의 자기신체결정권이 한국보다 훨씬 폭넓게 보장된다. 또한 거리에서 목격한 모든 부부들 중 아이를 안고 있는 쪽은 언제나 남편이었으며, 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정성들여 놀아주는 모습을 어디에서나 늘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풍경을, 그들이 사는 모양새를 2달 동안 매일매일 눈에 담으며 그곳의 삶을 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한국보다 더 붉은 빛을 띠며 찬란하게 저무는 해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한국과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구름이, 금색의 머리칼이, 파랗고 초록의 눈동자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자연스럽고 수수한 민낯의 얼굴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다르게 살아볼 수도 있다고, 이제와는 전혀 다르게, 이곳에서, 다시 살아볼 수도 있다고. 모두 버리고 여기서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다고, 이곳의 일원이 되어 여기에서 평일을 가져볼 수도 있다고. 그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삶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 나는 그곳에서 매순간 그것을 실감했다. 왜, 다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더 생기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 나라에 가서 직접 지내본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계가 막연한 상상이 아닌, 현실의 체험으로서, 실감으로서 다가온다는 것일 테다. 내가 진짜 이곳의 일원이 될 수도 있겠구나. 여기서 아침을 맞이하고 평일을 이어갈 수도 있겠구나.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나와 맞는 방식으로,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을 보며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오감으로 그 실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감은 현재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관심분야가 달라지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진다는 부수적인 변화도 있겠지만, 핵심은 또 하나의 ‘숨구멍’이 생긴다는 것에 있다. 내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득바득 버텨야할 필요가 없구나, 라는 생각에서 오는, 그리고 그것을 직접 실현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자유로움 같은 것. 내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이 되지 않겠구나, 나는 언제든 내가 원하는 풍경을 기꺼이 움켜쥘 수 있겠구나. 꽉 막혔던 숨이 한 순간 트일 수 있는 공간, 그 틈이 생긴다는 것에.


그것을 깨달은 후로 나는 대학생 후배들에게 갈 수 있을 때 빚을 내서라도 해외에 다녀오라고 한다(물론 이 망할 코로나가 끝났을 무렵). 그때의 경험이 앞으로의 너의 삶에 변화를 줄, 또는 일상을 버티게 해줄 숨구명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가능한 많은 숨구멍을 만들어 두라고. 너 자신에게 더 많은 세계를, 더 많은 가능성을 실감하게 해줄 기회를 주라고. 그러면 과거의 너에게 기꺼이 감사할 일이 언젠가 반드시 생길 터이니.     

이전 18화 엄마, 엄마도 위로가 필요했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