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란 Jul 28. 2021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


평소보다 곱절은 무기력한 여름날의 주말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나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거의 물아일체 수준이라고 할까. 오후 2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나는 일어날 생각을 않고 침대에서 뒹굴 거렸다. 아, 무력하고 우울해라. 아무것도 하기 싫단 말이야. 결국 나는 배고픔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비척비척 부엌으로 향했다. 대충 뭐라도 주워 먹고 침대에 다시 누울 작정이었다.


그런데 냉장고에 손을 얹는 순간, 엇, 저게 뭐야. 냉장고 표면에 작은 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가만 보니 그것은 벌레였다, 날파리! 나는 그들을 향해 잽싸게 손바닥을 내리쳤다. 몇은 떨어져 죽었고 몇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남은 날파리들을 잡으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우리 집에 날파리가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그들은 부엌과 화장실, 베란다까지 이미 점령한 듯했다.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벌레 퇴치 스프레이와 바람보다 날랜 나의 손바닥으로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응징했다. 온 세포를 시신경에 집중하여 그들의 행적을 쫒았고, 빠르고 정확한 몸놀림으로 그들을 차례차례 죽여 나갔다.


그렇게 30여분을 사투하다보니, 나는 방금 전까지 나를 지배하던 우울과 무력감이 어느새 완전히 몸 안에서 빠져나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날파리를 잡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몸에서는 열이나 이마에 삐질삐질 땀이 나고 있었다. 월요일, 강제로 출근길에 오르기 전까지는 절대로 없어질 것 같지 않았던 우울과 무력감이 단 몇 분 만에 소멸된 것이다. 나는 놀라워하며, 그래, 바로 이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무기력할 때면 날파리를 잡기로.



언젠가 가수 아이유가 우울을 떨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아이유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어떻게든 빨리 몸을 움직인다고 했다. 집안을 돌아다니든, 설거지를 하든, 뜯지 않았던 소포를 뜯든. 그렇게 우울감이 찾아올 때면 그 기분에 속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이다. “이 기분은 영원하지 않으며, 5분 안에 내 의지로 바꿀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고.


당시 인터뷰를 볼 땐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하면 손가락 까딱할 의지조차 남아있지 않게 된다고, 라고 중얼거렸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건 타이밍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완전히 무기력해지기 전에, 무력감을 느끼는 시점에 바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포인트다. 어떤 행위든 상관없다. 날파리를 잡든 피티 체조를 하든 청소를 하든. 그저 몸을 움직이면서 그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면 된다.


종종 우리는 우울과 무력감을 커다란 재앙처럼 여기며 너무 쉽게 그것에 굴복하고 만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방문하면 혼자서 더 깊은 구덩이를 파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타이밍을 잘 조절해 빨리 처치를 내리기만하면 아주 간단하고 손쉽게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날파리를 잡는 아주 하찮은 몸짓만으로도.


그것을 깨달은 후로 나는 우울감이 들려고 할 때면 일단 집을 한 번 죽 둘러본다. 아직까지 생존한 날파리는 없는지, 집안 꼴은 괜찮은지, 미뤄둔 빨래와 설거지는 없는지, 음식물쓰레기는 제때 비웠는지 등등.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샅샅이 찾는다.


집안에 이상이 없으면 얼른 이어폰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간다. 노래를 들으며 헛둘헛둘 걷다보면 어느새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슬며시 발을 내밀었던 우울은 어느새 저 멀리로 사라져있다. 그래, 그녀의 말이 맞았다. 이 기분은 영원하지 않으며 단 5분 만에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제야 어느 영화에서 봤던 명대사가 마음에 진하게 와 닿는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우울과 무기력을 나의 통제 아래에 두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이전 20화 첫 책 출간 계약을 마치고 비로소내가 멈춘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