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실망 사이의 낙차가 남들보다 심하다. 얼마나 심하냐면 학창시절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을 할 기회가 생겼는데(그때는 정말 가난해서 외식할 기회가 일 년에 몇 없었다.), 일이 틀어져 그냥 집에서 먹기로 결정이 났다. 한껏 들떠있던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때 내 나이가 열 넷이었던가 다섯이었던가. 어쨌든 외식 못했다고 대성통곡을 할 나이는 지났는데, 당시 나는 한순간에 폭삭 무너져버린 마음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만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버린 것이다.
어쨌든, 그 이후로도 삶에선 뜻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많았고, 보답 받았던 적보다 받지 못했던 시간과 노력들이 쌓여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대와 희망 사이의 낙차에서 비롯된 좌절과 회의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떼굴떼굴 구르다 구렁텅이로 빠지기 일쑤였고.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나는 모든 것에 기대를 품지 않게 되었다. 내 삶에도, 나 자신에게도.
혼자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게 끔찍이도 싫어서 언제나 ‘내가 잘 될 리가 없지’ ‘나한테 좋은 일이 생길 리가 없어, 어차피 이것도 망할 거야.’라고 되뇌면서 살았다. 애초에 아무 기대를 하지 않으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 덜 상처받고 덜 고통스러우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방어기제였다. 상처와 좌절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
하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나쁜 결과를 상상하는 버릇은 곧 진심이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 삶에는 좋은 일이 생길 리가 없다고 믿게 되었고 자주 자기혐오에 빠졌다. 우울이 유독 깊어지는 밤이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잘하는 게 뭐지?’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걸까, 어차피 난 성공할 수도 없고 내 생에 좋은 일이 일어날 리도 없는데’
나는 그렇게 어느새 스스로 삶에 대한 나쁜 예언자가 되어 있었다. 그 결과로 나의 자존은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밤마다 거대한 불안이 나의 숨통을 짓눌러왔다. 뭐든 잘될 리가 없다고, 내가 잘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니 모든 일이 공포로 다가왔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일, 오늘 하루만큼의 시간을 버티는 일, 내일을 살아가는 일, 그 모든 것에 자신이 없었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했으며 몇 번이고 회의에 젖었다. 이렇게 열심히 적어봤자 내 글은 아무도 읽지 않아. 내 글은 성공할 수 없어. 누가 내 글을 책으로 내준다고 하겠어?
그런데,
그런데 세상에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 일어났다. 출판사에서 내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실은 브런치에 적은 글들을 묶어 출판사에 투고했는데, 그중 몇 곳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누가 내 글을 책으로 엮어주겠다고 하다니. 그것도 한 곳도 아닌 여러 곳에서! 나는 출간제의를 받고서도 얼떨떨해하며 계속 의심했다 이제 진짜일까? 거짓말은 아닐까? 뭔가 잘못되어 출간 취소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전전긍긍 불안해하다 출간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멈추게 되었다. 아니, 멈추는 쪽을 ‘선택’했다. 내 글과 나 자신을 의심하는 일을. 내게 좋은 일이 있을 리 없다고, 내 일이 잘 풀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제는 그만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봐,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겼잖아. 이렇게 간절히 바라왔던 일이 이루어졌잖아. 아무도 알아봐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누군가 알아봐주었잖아 발견해주었잖아.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건 결국엔 쓰고, 쓰고, 또 썼던 나 자신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걸. 엄청난 회의와 좌절과 번민 속에서도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던 과거의 나 때문이었다는 걸. 더딘 발걸음을 조금씩 옮겨 구독자를 한명한명 모으고, 또 한 편의 글을 발행하고, 다시 한 번 텅 빈 백지장을 붙들고 꾸역꾸역 키보드를 눌러서였다는 걸.
“자신의 인생을 두고 자꾸만 나쁜 예언을 하는 걸 그만두자. 불행한 아이였다고 해서 불행한 어른이 되란 법은 없다. 자기에겐 행복이 해당될 리 없다고 멀리하거나 행복 앞에서도 언제나 끝부터 생각하고 조바심을 내는 것.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잘 아는 불행과 모르는 행복 사이에서 애써 후자를 고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불길한 예언은 그만두고, 좋아 보이는 새 옷을 입은 채로,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사람을 만나자. 그런 선택이 쌓이다보면 언젠가 행복이 맞춤복처럼 편안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_ 정문정 에세이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중
그러므로, 우리 모두 스스로의 삶에 나쁜 예언자가 되는 것을 이제는 멈추기로 하자. 비관과 자괴와 혐오로 점철된 나의 삶에도 이렇게 좋은 날이 왔으니, 당신들에게도 분명 올 것이다 그런 날이. 분명 누군가는 당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알아봐줄 것이고 당신에게는 빛나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멈추지만은 말자. 자신의 재량을 의심하고 회의에 빠져있지 말자. 언젠가는 싹을 틔워 발견될 터이니 그저 하던 일을 계속 해보자. 기대도 없이, 절망도 없이 그저 하고, 하고, 미워도 다시 한 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