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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n 27. 2022

아빠의 뒷모습이 건네던 말

집을 나서는 그의 등이 건네는 말을, 이제는 들을 수 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로 말할 거 같으면,


그는 경상북도 안동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몸소 ‘가부장’이라는 단어를 체화하며 산 인물이다. 그는 고지식하고 무뚝뚝하며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런 그에게서 사랑은 고사하고 살가운 표현 한 마디 들어본 적 없다. ‘사랑한다’는 말은 꿈도 꾸지 않는다. ‘고맙다’ ‘미안하다’와 같은 일상적인 표현조차 들어본 적 없으므로.


그래서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가 과연 나를, 아내를,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실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건 자신의 사업밖에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항상 마음 속 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며칠 전, 나는 그런 의심들을 마음에서 전부 물릴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엄마의 친구가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 후로.


“그에게는 책임감이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어요.”


아빠의 무뚝뚝한 태도에 새삼 서운함을 느낀 엄마가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자 친구 분이 위와 같은 답변을 주셨던 것.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아빠와 사랑과 책임감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 책임감, 책임감으로 말하자면 아빠를 따라올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첫 번째 사업이 완전히 망했을 때, 집에 빨간 딱지가 붙고 은행에서 파산신청을 해야 했을 때, 그는 딱 3일을 쉬고 다시 일을 하러 나갔다. 친구 아빠는 사업이 망했을 때 6개월을 쉬었다고 했는데. 그는 그의 전부를 투자한 사업이 손 써볼 틈도 없이 산산조각 났을 때도 단 며칠 만에 다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찾은 새로운 직업은 ‘막노동’이었다. 그 옛날, 부산대학교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국 3대 기업이었던 대우건설에 합격해 차장까지 올라갔던 그는 이제는 막노동을 하러 매일 아침 집을 나선다.


막노동을 하는 아빠의 옷은 항상 더러웠고, 그는 점점 말라갔다. 그만큼 일이 고됐다는 뜻일 테다. 군것질을 일절하지 않던 그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식탁에 보이는 빵이며 과자 따위를 뱃속으로 욱여넣었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배를 채웠다. 군것질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그럼에도 계속 살이 빠져가는 모습도 모두 낯설었다. 매일매일 해가 뜨기 전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땡볕 아래에서 철근과 벽돌을 나르는 아버지. 그가 쉬는 날이라곤 비 오는 날밖에 없었다.


그의 일당은 십 만원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하루살이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다. 매일매일이 시험이고 시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엄마에게 50만원을 건네며, 이 돈으로 다른 거 하지 말고 수술부터 하라고 했다. 그때 엄마는 요실금으로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오십 만원. 그것은 그가 하루 열 시간씩, 5일 동안 매일같이 흙먼지 속에서 뒹굴며 번 돈이다. 그는 그렇게 일 년 동안, 담뱃값과 술값을 제외하고는 당신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는 동시에 원망했었던 거 같다. 자신의 야심으로, 모두가 말렸던 사업을 기어코 시작해 결국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에 대해. 가족 모두를 이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에 대해 분노와 원망이 속에서 치솟았다.


그런데 내가 그때 이것을 알았다면, 그러니까 우리 네 명의 가족을 짊어졌던 그의 뒷모습이 건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등에 업혀있던 그 책임감이, 실은 사랑한다고 계속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그 당시 아빠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매일같이 새벽에 집을 나서던 그에게, 일어나서 졸린 눈꺼풀을 비비며 잘 다녀오시라고, 몸조심하시라고 인사를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돌아오는 그에게 수고했다며, 언제나 사랑하고 또 존경한다고 장난처럼이라도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지금 아버지는 2년 전부터 새 사업을 시작해 역시나 아슬아슬 위태롭게 운영 중이다. 그는 요즈음 회사에 가기 전, 카페에 들러 1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공원에 30분쯤 앉아 있다 발걸음을 옮긴단다.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가 푸슬푸슬 웃으며 대답한다. “에라이, 일하러 가기 싫으니까 괜히 커피나 한잔 사 마시면서 걷는 거지.” 나는 평생을 당신은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그가 일하러 가기 싫다고 하다니. 신선한 충격이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건, 그래서 여기 분명하게 적을 수 있는 건, 그래도 당신은 매일 회사를 갈 거라는 것. 끝내 갈 것이고, 기어코 갈 것이라는 사실. 그것이 가족에 대한 당신의 책임감이자, 사랑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고도 자랑스럽게 적을 수 있다. 집을 나서는 그의 등이 건네는 말을, 이제는 들을 수 있다. 아버지, 당신이 내내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러므로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밤에는 그가 좋아하는 맥주를 준비해 둬야겠다. 그가 돌아와 막 씻고 나왔을 때,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시원한 맥주를 꼴깔꼴깍 잔에 따라 씩 웃으며 건네야지. 그러면 그도 씩 웃으며 기꺼이 잔을, 손을 마주잡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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