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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Mar 15. 2022

더는 재능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친애하는 동료 작가님께서 뉴스레터를 시작하셨어요. 청춘들의 삶의 고민을 담은 사연을 받고, 그에 대한 답을 편지 형식으로 전해주는 거죠. 콘텐츠에는 작가님의 경험담과 지혜가 정성스런 문장 아래 꼭꼭 담겨져 있었고, 사연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드라마, 음악,영화, 유튜브, 책 등)가 함께 구성되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는 ‘재능’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그는 현재 취업준비를 내려놓고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됩니다. 똑같은 교육을 받고 시간을 투자했는데,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을 보며 회의감을 느끼는 것이죠. 그는 “내가 가진 능력은 재능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고, “간절함이 재능이라면 이만큼 큰 재능이 없을 텐데, 자신은 계속 짝사랑만 하는 것아” 속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는 게 현명한 방법인가, 고뇌하고 있었어요.


재능. 저도 한때는 이놈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항상 제가 가진 재능의 크기와 가능성을 저울질하다 종내엔 좌절감과 무력감에 고개를 털레털레 젓고는 했어요. 그 시절 제가 생각하는 재능이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천부적으로 타고난 소질’ 또는 ‘남들보다 비상한 능력’ 같은 것이었습니다. 박지성이나 김연아 선수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경지까지 성큼 발을 디딘 사람들이요. 그런 게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6살 때쯤이었던가요. 재능에 대한 저의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노력’과 ‘재능’은 완전히 독립된 두 개의 개별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제는 ‘무언가에 그만큼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재능인 것 같습니다. 한 가지에 집요하리라만치 치열한 노력과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것,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마음 같은 것들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 중 하나인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한수희 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작가님의 생각이 꼭 저와 일치하여 동그라미를 쳐두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고 불평을 터뜨린다.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그 감독이나 작가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는 웬만해선 그 사람들처럼 영화를 만들거나 책을 쓰는 수고를 감내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중략)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는 건 쉽지만 그걸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데는 거의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노력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뭔가를 해낸 사람과 하지 못한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본다.”


한 분야를 깊고 꾸준하게 좋아하는 것 자체가 저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그것에 오랜 시간 마음을 쏟고 품을 들이는 건 더 힘들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이더라도 뚜렷한 성과와 타인의 인정이 나타나지 않으면 금세 등을 돌려버리잖아요. 당장의 일이 바빠 하염없이 나중으로 미뤄 두기도 하고요. 그런데요, 진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큰 성과도 없고 사람들의 관심도 변변찮은데도 계속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하고야 마는 이들.



잠시 제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글을 좋아하고, 그래서 잘 쓰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면 쓸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졌어요. ‘나는 정녕 이 분야에 한 포기의 재능도 없는 게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한 편 한 편 정말 최선을 다해 고심하면서 썼는데도 구독자와 좋아요 수, 모두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였거든요(물론 지금도 어디 내놓기 떳떳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글을 쓸 때마다 회의감과 좌절감이 들더라고요. 글을 쓰는 도중에도, 심지어는 실컷 다 써놓고 마지막으로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도요. 왜 나는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이렇게 열심히 쓰는 걸까. 글을 쓸 때마다 보란 듯이 브런치 메인에 척척 전시되는 사람들,  쓴 글이 몇 편 되지 않음에도 구독자가 나의 2배인 사람들을 보며 좌절감은 배가 됐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도요, 계속 쓰게 되더라고요. 안 쓸 수가 없더라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빛을 보게 될 꺼야,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라 그렇게 긍정적인 상상은 할 수가 없어요. 다만, 저도 뉴스레터의 사연자분처럼 간절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한 분야고, 그러므로 잘하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되어 글로써 사람들에게 공감 받고 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울림을 주는 것. 그 시절의 저에게 그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의와 좌절 사이를 휘청휘청 오가면서도 계속 썼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글도 구독자도 점점 늘고, 결국엔 오랜 꿈이었던 출간에까지 골인하게 되었죠.


너에게 재능이 있니, 라고 지금 저에게 물으신다면, 저는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한 권의 책을 낼 만큼은 이 분야에 노력을 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지속되는 무관심과 미미한 성과 속에서도 2년간 글을 놓지 않았고, 여전히 꿈을 꾸었다는 것. 그 사실이 이 분야에 재능이 있다는 걸 증명해준 셈이죠.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다’라는 말, 한번쯤 들어보셨지요. 이 말은 ‘타고난 머리’보다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공부에 진짜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애초에 엉덩이 붙이고 한 곳에 앉아 있지도 못합니다. 그게 팩트예요. 마찬가지로, 당신이 진정 재능이 없었다면 그걸 지금까지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겠지요. 그게 뭐든, 여전히 좋아하고 잘하고 싶고 그래서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고 계속 하고 있다면, 부질없는 정성과 시간을 이번에도 기꺼이 쏟아 부었다면, 당신은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며 고민하지 않기로 해요. 대신 그 재능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기회가 왔을 때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도록 그냥 계속, 계속 하기로 해요. 그리고 누군가 당신에게 재능이 있냐고 묻거든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겁니다. 살짝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깔고, 작지만 정확하게. “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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