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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n 13. 2022

강박증인데, 쿠키를 받았어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건 뭐였을까?

  

나는 지금,

이제껏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꽤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병이 있었다. 그 병은 17살 때 찾아왔다. 당시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급기야는 앞에 있는 친구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기만 해도 내가 싫어서 그러나, 하루 종일 생각 속에서 끙끙 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끝없이 되뇌어주었다.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닐 거야, 그냥 기분 나쁜 일이 생각났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해서 눈을 찌푸린 걸 거야’하고.


그런데 어느 날, 속에서부터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 나 때문이 아닌 걸까? 정황상 보자면 나 때문일 확률이 높은 거 아닌가?’ ‘저 아이도 실은 내가 싫고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언제부턴가 속에서부터 하나둘씩 올라오더니 급기야는 하루에 30~50개씩 떠올랐다. 그리고 점점 그 생각들은 나를 공격하는 형태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고? 아니야 상황을 봐,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잖아. 저 아이는 네가 싫은 거야.’ ‘아닌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 때문에 그런 거라는 가능성이 있는 거야’ 이런 생각들이 속에서부터 물밀 듯 들어찼고, 나는 그 생각들에 하나하나,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속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도 마음이 불편했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마음속에서 이런 대화를 이어가는 식이었다.


‘너 때문에 저 아이는 마음이 상한거야, 아닌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응, 아닌 굴뚝에 연기가 나기도 하더라’

‘그럼 그런 속담이 왜 생겼는데? 지금 네 상황이 이 속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 어디 한번 설명해봐’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생각에 빠져있었다. 때문에 과부화 된 머리는 항상 깨질 듯 아파왔고, 모든 에너지를 머리 굴리는 데 사용했기에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자 이 증상 또한 말끔히 사라졌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이 증상은 내가 극심한 두려움을 가지는 대상에 대해서만 발현 되었다. 그렇게 나는 폭풍의 열일곱을 지나 그로부터 10년간 무탈하고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지금, 그 증상이 다시 발현됐다. 이번에도 내가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에 대해서 증상이 발현됐는데, 그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조현병’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조현병을 무척이나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수면위로 번쩍, 하고 떠오른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건 이후부터 내가 조현병이 아닌지 미친 듯이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조현병에 관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너 정말 조현병 아니야? 이런 증상이 조현병의 증상 아니야?’

‘너는 조현병이야. 네가 원치 않는 생각들이 네 의사와 상관없이 자꾸 떠오르잖아’

‘조현병이 어떻게 글을 읽고 쓰고 정상적인 사고를 해?’


이런 생각들이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 생각들에 또 다시 하나하나 대답해주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증상들이 점점 심해지자 나는 제대로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무언가에 집중을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정신과에 가는 것은 너무 무서웠다. 선생님께서 정말 내게 조현병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진짜 조현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면 나는 더 이상 생각할 수도, 글을 읽고 쓸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증상이 발현된 지 4개월이 지난 시점, 나는 결국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죽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그렇다면 이왕 죽을 바엔 이 병명이 무엇인지는 알고 죽자,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내 증상을 가만 듣고 계시더니 진단을 내렸다. “예란씨, 그건 강박증이야. 예란씨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강박사고’고, 예란씨가 마음속으로 대답하는 행위들은 ‘강박적 습관’ 이라고 하는 거야.” 강박사고(침투사고)란 본인이 원치 않는 생각이나 관념, 단어, 영상, 충동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현상이고, 강박적 습관이란 강박 사고에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마음속으로, 또는 실제로 반복하여 하는 행동이다.


아, 그렇구나, 나는 강박증이었구나·······. 그말인즉슨 조현병이 아니라는 거네! 할렐루야! 처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후 나는 정말로 속으로 그렇게 외쳤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조현병이 아니었구나, 강박증이었구나! 나는 속으로 기쁨의 댄스댄스를 추며 둥실둥실 발끝을 세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강박증환자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강박증환자는 사실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문제를 만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물이 100도씨에서 끓는다는 명백한 진리를 알면서도, 우리 집 커피포트가 100도씨에서 끓지 않아 내가 질병에 걸릴까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이다. 나는 전문의에게 강박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내가 조현병이 아닐까,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조현병의 증상 중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어김없이 강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예를 들어 집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나도 나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것이 환청인가 아닌가 의심했고, 말이나 생각이 조금만 꼬여도 이게 와해된 언어가 아닐까, 끊임없이 의식하며 생각했다. 결국 이 지독한 강박증 때문에 죄 없는 의사 선생님은 한 달 내내 내가 조현병이 아니라는 말을 해야 했으며, 그 이유를 거듭 설명해 주어야 했다. 확인을 받은 나는 그 순간 안심할 수 있었지만, 돌아서면 또 의심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물었다.

“그런데 예란 씨, 예란씨는 왜 이렇게 조현병을 무서워하는 거예요?” 나는 그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더 이상 읽고 쓸 수 없을까봐서 두려워요”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읽고 쓸 수 없는 병들은 너무나도 많아요, 사고가 나서 팔이 절단 돼도 글을 못 쓰고, 알츠하이며에 걸려도 못써요, 심지어 우울증이 심해도 글을 읽고 쓸 수 없잖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선생님은 말문이 막힌 나를 보며 다음 주까지 이유를 생각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랬다. 하고 많은 질병 중에 왜 나는 유독 조현병을 무서워했을까.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조현병을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여겼다. 약으로 치료하는 게 불가능하고, 치료가 가능하더라도 한계가 있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체에서는 조현병 환자들이 중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열심히 퍼다 날랐고,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현병이라고 하면 기겁을 하며 도망갔다. 그래서 나는 조현병을 몹시도 두려워했다. 치료할 수 없는 병. 사람들이 기겁하는 병.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병,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병.


이런 내 생각을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웃으며 대답하셨다, 조현병은 약만 잘 먹으면 얼마든지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글도 읽고 쓸 수 있는 병이라고. 자기가 아는 의사들 중에도 조현병인 사람들이 꽤 있고, 그들은 현재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조현병 환자인줄 모른다고. 조현병은 고칠 수 없는 병이 아니라, 당뇨처럼 때에 따라 조절해서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는 병이라고, 문제 될 거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란씨는 조현병의 전조현상도, 가족력도, 의심할 만한 증상도 전혀 없으니 제발 터무니없는 생각 좀 하지 말라고 익살맞게 덧붙이셨다. 예란 씨는 아니라고, 그냥 아닌 건 아닌 거라고. 나는 그제야 내가 조현병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오해가 나 자신을 갉아먹었고,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몹쓸 편견을 심어주었다는 것도. 나는 그 순간, 어느 작가님의 브런치 글에서 읽었던 “정신병에 대한 얕은 지식과 깊은 편견이 한 사람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나는 비로소 그 문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멍하게 있는 내게, 선생님은 불쑥 쿠키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놀라자, 선생님은 “나는 예란 씨가 참 좋은 것 같아, 예란 씨가 참 좋아”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니라고, 왜 나를 좋아하느냐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당황해하며 횡설수설 했다. 선생님은 쿠키를 앞으로 더 내밀며, “좋아해서 주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좋아해서 주는 거라고. 나는 여전히 멍한 채로 쿠키를 받아들고 진료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나는 쿠키를 바라보며 ‘내가 이제껏 그렇게 두려워했던 건 과연 뭐였을까?‘와 “예란씨가 참 좋아” 사이를 빙빙 맴돌며 생각에 잠겼다. 아 맞다, 선생님이 나보고 그만 좀 생각하라고 했는데, 나는 너무 생각이 많아 문제라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커피와 쿠키를 먹고 있자니 머릿속이 잠잠해지고 마음이 편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조현병이니 강박증이니, 그게 다 무언가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건방을 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며칠 후면 다시 불안해하며 조현병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쿠키를 바라보며 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게 그렇게 큰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세상 살면서 실은 그렇게 큰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비틀대며, 한 손에는 쿠키를, 다른 손에는 “예란 씨가 참 좋아” 이 한 문장을 꼭 쥐고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떼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제나 그랬듯 내 삶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고, 이 장면은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앎으로. 삶은 이어지고, 이 강박증 또한 언젠가 끝나겠지. 그러니 이번에도 살금살금 조심스레 걸음을 떼 봐야겠다. 일단 이 글이 그 첫걸음이 될 것 같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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