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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Aug 01. 2022

바퀴벌레가 가르쳐준 자존감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뭐니, 싫어하는 게 뭐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바퀴벌레요’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바퀴벌레가 싫다. 끔찍하게 무섭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직접 잡아본 적이 없다. 항상 옆에 있는 누군가가 대신 잡아줬고, 내역할은 언제나 저어 멀리 떨어져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도망가기, 그리고 소리 지르기. 그런데 바야흐로 일주일 전, 나타난 것이다 그것이 우리 집에. 밤 열 시경, 혼자 사는 집에. 당연히 대신 잡아줄 사람 따윈 없다.


족히 손가락 두 마디는 되어 보이는 커다랗고 검은 녀석이 방구석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자, 나는 혼비백산이 되어 저어 멀리 떨어져서 팔짝팔짝 뛰며 어떡해, 어떡해,를 연발했다.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몇 십분 째 뻔뻔히 방안을 기어 다니는 녀석을 보며 으아악, 어떡해, 으헝헝. 아악!!! 각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결국 나는 잡기를 포기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거실 의자에 앉아 사건을 방관했다. 그래, 내가 저걸 어떻게 잡아.... 나는 못해... 나는 못 잡아... 나는 절대 바퀴벌레를 내손으로 잡을 수가 없어......


다 포기하고 그냥 언니한테 전화해서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나와 같이 호들갑을 떨 거라고 생각했던 언니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잡아야지, 뭘 어떡해. 거긴 네 집이고, 지금 너밖에 없고, 그러니까 네가 잡아야지. 언니는 바퀴벌레 약이 없으면 에프킬라라도 뿌려서 잡으라고 했고, 나는 어쩐지 언니의 무덤덤하고 단호한 태도에 이상한 용기가 솟구쳐 에프킬라를 들고 녀석이 있는 방안으로 향했다.


벽에 딱 달라붙어 있는 녀석에서 살충제를 뿌리자 녀석은 놀랐는지 속도를 내며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꺄악꺄악 소리를 지르며 살충제를 무한 발포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녀석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그놈은 힘을 잃었는지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죽어가는 녀석에서 마지막 용기를 다 짜내어 다가가 살충제를 집중 발포했다. 결국 녀석은 배를 까뒤집고 죽어버렸고, 나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 사체를 집어 변기통에 버려버렸다(이 과정이 정말 진땀나게 무서웠다. 그녀석이 다시 살아나서 움직이면 어떡한단 말인가?!).


거사를 치르고 기진맥진 진이 다 빠져 거실 의자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에 한 문장이 반짝, 하고 떠올랐다. ‘해냈다!’ 그 한마디와 함께 속에서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뾰록, 작은 싹이 마음에서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 더없이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기특함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 자신이 너무너무 기특했다. 내가 이걸 해내다니, 평생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퀴벌레를 내가 잡았어!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평생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을,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결국 해낸 나 자신이 기특해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느낌은 며칠 간 지속됐고, ‘나는 바퀴벌레를 잡은 여자’라는 사실은 스스로를 뿌듯하고 당당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 닥치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들었다. 나는 속에서 차오르는 그 충만함과 뿌듯함과 자신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아, 결국 자존감이란,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구나!



전에 방송인 이효리가 핑클의 전 멤버들과 함께 캠핑을 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멤버들과 차로 이동하고 있던 이효리는 넌지시 말을 꺼냈다. “너희 어제 그거 못 느꼈지? 내가 정차할 때마다 일부러 그늘을 통과해서 스쿠터 세웠던 거, 너희 그늘에서 쉬라고.” 그리고 이어 말했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감동했잖아” 멤버들은 그런 줄 몰랐다는 얼굴을 하다가,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서 꺄르르 웃었다. 이효리는 이어, “사실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자신이 기특해 보이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거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남편과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같이 나무 의자를 만들고 있는데, 남편 이상순이 의자 밑바닥을 열심히 사포질 하고 있었더랬다. 이효리는 “그거 보이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해? 누가 알겠어?” 라고 말했는데, 이상순은 “내가 알잖아”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때 이효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얼마나 인정해 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얼마나 기특해하고 인정해주고 있는가가 자존감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결국 자존감은 ‘내가 나를 기특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도저히 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바퀴벌레를 잡았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의자 밑바닥을 열심히 사포질 할 때, 아무도 보지 않지만 자신을 위해 정갈하고 반듯한 밥상을 차려 먹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전구를 척척 갈 때, 주차를 안정적이고 완벽하게 해낼 때, 우리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과 인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정과 칭찬을 입을 때 우리는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게 되고,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타인의 인정과는 다르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 그것이 자존감이고 자신감이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이런 것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번듯하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해 줄 때 우리의 등은 펴질 것이고 얼굴에서는 빛이 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도 보지 않아도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길 수 있는 일들을 많이 쌓아놔야 한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보지 않을지라도, 댓글이 달리지 않더라도, ‘좋아요’가 별로 없을지라도, 나는 이렇게 멋진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매주 한편씩 글을 올리겠다는 스스로와 한 약속을 착실히 지키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기특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나는 이렇게 자존감에 대해서 한편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런 자부심을 느끼며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글을 쓰는데 매번 시간과 진심을 가득 쏟는 나 자신이 기특하고 어여쁘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 자신을 기특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 좋겠다. ‘나는 이런 것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고 내가 인정해주는 일을 착실히 하는 사람이야’ 모두 이 문장을 마음에 품고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자신을 귀엽고,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당당히 여기면서, 무너지지 않을 자존감을 마음에 품고서 씩씩하게 나아갔으면. 그래서 종내에는 자신에게 말해주었으면.


“내가 나 자신에게 감동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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