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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Jun 20. 2022

과거의 나에게 빚지는 게 어때서


어느 인터뷰에서, 10년 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유가 답했다. “과거의 나에게 빚지지 않기를” 이 인터뷰를 읽었을 당시에는 손뼉을 짝, 치며 문장에 동그라미를 쳐두었다. 과거에 내가 일구었던 성취, 명성, 업적에 기대지 않고, 현재를 착실하게 살고 성취하며 앞으로도 계속 전진 하자는 취지의 말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과거의 나에게 빚 좀 지면 어때서. 어쩌다가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느냐고? 그야 지금 내가 과거에 빚지면서 기생하고 있거든.


과거의 나는 열심히 읽고, 쓰고, 돈을 벌었다. 일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브런치 구독자 수도 목표했던 것에 많이 가까워졌고, 오랜 꿈이었던 책도 출간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몇 달 전에 다시 시작된 강박증으로 인해 예전처럼 열심을 다할 수가 없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 아니 거의 모든 시간을 머릿속의 생각들(강박사고)과 싸우면서 소비하고 있다. 그 지랄을 하느라 에너지도 바닥을 쳤고 두통 때문에 식욕과 수면욕마저 사라졌다. 그래서 120일이 넘는 시간동안 단 5편의 글밖에 쓰지 못했다. 예전엔 일주일에 한두 편을 거뜬히 썼는데.


그에 따라 자연히 내 브런치를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구독자도 늘지 않는다. 현재 260명이라는 구독자도 다 과거의 내가 혼을 갈아 모은 숫자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여전히 ‘좋아요’ 소식이 간간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 내가 써두었던 글에 대한 흔적이다. 과거에 머리를 싸매고 시간을 투자하여 써둔 글 덕분에, 글을 쓰지 않는 요즘도 ‘좋아요’의 흔적이 종종 발견되는 것. 그러니까 나는 지금 철저하게 과거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거에 빚 좀 지면 어떠랴. 사람이 어떻게 매 시기 건강하고 잘나가며 혼과 몸이 온전할 수가 있겠어. 우리는 모두 예기치 못한 순간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아픔에 허우적거리고, 무기력해지는 존재인데. 우리 곁에는 항상 그런 자연재해와 같은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미처 예상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한 채, 그저 무력하게 맞을 수밖에 없는 일들. 우리를 기어코 바닥에 쓰러지게 만드는 일들. 벌거벗게 만들고, 일어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과거에 빚 좀 지면서 살아야지. 과거에 내가 일구어 놓았던 성취, 모아둔 자본과 인맥들, 능력들에 당분간 기대어 몸과 정신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라도 살아있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씻고 밥숟가락을 뜨고 숨을 쉬어야 한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이 순간도 영원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끈질기게 지구에 발붙이고 있어야 한다.


실은,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 모습이 너무 비참하고 원망스러웠다. 아니, 그냥 많이 슬펐다. 많이 많이 슬펐다. 왜 하필, 지금 이 때에 강박증이 다시 발현돼서! 왜 나는 강박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다시는 예전처럼 반짝반짝 빛을 낼 수 없을 것만 같았고, 그 생각이 나를 살기 싫게 만들었다. 하지만 제 발로 정신과를 찾아가고, 다시 약을 먹고, 매주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나는 ‘강박증에 걸린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불안 속에서 눈을 뜨고 불안 속에서 눈을 감는 일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헛된 생각에 빠져 하루를 허비하는 내 모습도, ‘김예란’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잠자코 약이나 먹으면서 생각과 몸에 힘을 빼고, 과거에 내가 땀 흘려 일구어 놓았던 것들에 얌전히 기대어 있는 것이다. 벌어놓은 돈을 쓰고, 적어둔 글로 브런치를 유지하고, 이전에 쌓아둔 관계들을 이어가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전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을 때 최선을 다해놓아서 다행이라고. 벌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벌고, 저축해두었으며, 글을 쓸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적어 두었고,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진심을 다했던 것. 그렇게 할 수 있었을 때 그렇게 해두었던 것. 그것이 지금의 나의 생활을 받쳐주고 있다. 그것이 나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쓰러진 내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차분히 시간을 주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 한없이 약해진 내가, 과거에 씩씩하고 강했던 내게 기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머지않아 다시 일어서게 된다면, 걷게 된다면, 다시 달릴 수 있게 된다면, 최선을 다해 달려 놓겠다고. 그때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달릴 수 있을 만큼, 끝에 끝까지 달릴 것이라고. 다시 바닥에 쓰러졌을 때, 지금처럼 그 누구도 아닌 과거의 나에게 기댈 수 있도록.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당당하게 빚질 수 있도록. 건강할 때, 쓸 수 있을  때, 즐길 수 있을 때, 일할 수 있을 때 진심을 다해 전력으로 그것을 충분하고도 충만하게 누리겠다고. 그런 맥락에서 이 글은,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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