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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란 Feb 17. 2023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

세상에 '절대'란 없습니다



인생 참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 요즘 서른이 되어 가장 자주 드는 생각은.


과연 우주 미세먼지인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게 세상에 있기는 할까, 싶은데. 20대 초반 때 내가 가장 단언했던 것은 바로 ‘내 동생은 살을 뺄 수 없다’는 것이다. 동생은 나와 8살 차이로, 어렸을 때부터 고도 비만으로 자랐다. 아니, 애초에 태어나기를 4kg 우량아로 태어났다. 정말 먹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느냐면, 그릇에서 밥 한 숟갈(정말 한 숟갈이다. )이라도 덜어내면 눈물이 그렁그렁 해가지고는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 정도였다. 있는 건 당연히 먹고, 숨기면 찾아서 먹고, 없으면 만들어 먹는 게 내 동생이었다. 그의 인생 최대 낙은 배를 터질 듯이 불려놓고 그 포만감에 스르륵 잠이 드는 것이었다. 그랬으므로 나는 단언했다. 쟤는 절대 성인이 될 때까지 절대 살을 뺄 수 없을 것이라고. 살을 뺀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기로.


그런데, 뺐다. 

기어코 그가 15kg을.


열일곱, 한창 성장 호르몬이 나오면서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그는 친구들의 놀림에서 탈피하기 위해, 그리고 이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이를 악물고 몸무게를 감량했다. 하루 세 시간씩 운동을 했으며, 식사량을 1/4로 줄였다. 배가고파 지쳐 쓰러져 잠들 정도로 그는 먹지 않았다. 그 참기 힘들다는 식욕을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정신력을 바닥부터 끌어 모아 버티고 또 버텼던 것이다. 그의 키는 성장기에 힘입어 멀대 같이 자랐으며 그와 반비례해 살은 쑥쑥 빠져갔다. 살에 묻혀있던 이목구비가 들어났으며 들어가지 않았던 사이즈의 옷이 헐렁하게 남기 시작했다. 눈이 커지고 코가 오똑해졌다. 나도 눈이 커지고 콧구멍이 벌름 거렸다. 손에 장을 지질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확신과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찼던 발언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때처음으로 확언하는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살풋 느꼈을지도.


그런데 사람의 실수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나의 두 번째 확언은 대학교 4학년 시절 발화되었다. 당시의 나는 학교를 졸업해 절대 기자는 되지 않겠다고, 그리고 광고대행사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기자처럼 아무 감정도, 온기도, 색채도 느껴지지 않는 글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나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나만의 색채와 온기가 띄고 있는 글을 쓸 것이라고 장담했고, 광고와 마케팅은 나와 상극이므로 광고대행사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광고대행사와 언론매체에서 면접제의가 들어왔다. 그리고 난 기자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앞으로 기자로서 근무하게 될 것이다. 즉, 나는 이제 아무 온기도, 색채도 없는 사실위주의 딱딱한 글을 쓰게 될 것이란 말이다. 두 번째 장담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에 호언장담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낱 우주먼지에게 ‘절대’는 없다고. 절대란 단어는 되도록, 아니 이제부터 쓰지 않겠노라고. 이 세상에 나에게 ‘절대’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도 없다고. 세상에서 절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물이 100도 씨에서 끓으며 해는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며 지구는 둥글다는 것 정도라고. 그러므로 사람 일은 정말이지 모르는 것이다. 알 수가 없다. 그게 설령 나의 일일지라도. 이것을 나보다 먼저 깨달은 친구는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되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나는 이러이러하니까 이건 못해’, ‘이건 절대 안 해’가 아니라,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가는?’ 이라는 마인드를 장착하고 산다고. 과연 현명한 자세다.


최근에 나의 합격 소식을 들은 취업준비생 친구가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다. 축하한다고, 그런데 나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왜 나만, 나 혼자서만 아직도 이 자리 이곳에 이렇게 있는지 모르겠다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진다고. 자신은 절대 잘될 수 없을 것 같다고. 당시 그 친구에게 어떤 위로를 덧붙여야 할지 몰라 그저 머지않아 질 될 거라고만 말해주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니 그 친구에게, 그리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네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인생 모르는 거라고. 아무도 모른다고. 지금 엎어져 있지만 언제 행운이 내게 찾아올지 모르고, 지금은 위에 있지만 언제 아래로 추락할지 모르며, 지금은 ‘절대’를 말하고 있지만 언제 그 ‘절대’가 깨질지 모른다고. 그러므로 너무 자신만만하지도, 너무 겁먹지도 말라고. 세상에는 수백억가지의 가능성이 있고, 그 가능성은 언제나 너에게 열려있다고. 


그러니 우리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 두지는 말자고.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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