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에 남편은 종종 꽃을 사 오던 사람이었다. 꽃을 사 오는 시기는 대체로 부부 싸움 이후였기 때문에 우리의 다툼 만큼이나 꽃을 사 오는 빈도는 잦았다. 우리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들이 있던 이후에 남편은 늘 꽃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며 환한 미소와 함께 꽃을 건네곤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 웬만한 건 맞춰 살게 되고 다른 우리가 만나 생긴 균열이 맞춰져 결혼생활이 조금은 익숙해질 즈음 싸우지 않았는데도 퇴근길에 꽃을 사들고 온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 있다. 내가 꽃다발을 받을 때 짓는 환한 미소를 보면 행복해진다면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꽃다발을 사 오겠다고. 당시에는 정말 지킬 거라 생각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매번 말리는 거 힘드니까 사 오지 마~' 얘기했는데, 이후에 남편은 정말 달마다 꽃다발을 들고 왔다. 이벤트가 있는 달이 아니어도 달마다 꽃다발을 사 오는 남편 덕분에 나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꽃의 물을 매일 갈고, 마를 시기에 맞춰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꽃을 말리는 일은 내겐 매번 다시 해도 행복한 일이었지만.
요 며칠 내내 기억도 나지 않는 일들로 남편과 얼굴만 마주치면 싸우고 냉전 중이었는데, 늦은 밤 퇴근 이후에 운동을 다녀온다던 남편이 열시가 넘어 귀가하며 꽃을 사 왔다. 남편의 운동이 끝날 시간임에도 들어오지 않고 늦게 오는 게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오늘 또 2차전이구나, 거실 한가운데 앉아 시간이 흐르는 걸 지켜보며 한참 벼르고 있었다. 다 늦은 시간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부리나케 문 앞으로 달려갔는데 현관문 앞으로 꽃을 든 손이 불쑥 보인다. 잔소리를 하겠다던 다짐은 잊고 예쁜 꽃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왜 꽃을 사 왔어~' 하면서 냉큼 꽃부터 받아들었다. 이 시골에 꽃집이 있으리란 생각은 못 했기에 이 밤중에 어디서 사 왔냐 하니 집에서 조금 먼 읍내에 유일한 꽃집이 있단다.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니 이번에도 분홍색 꽃으로 골라왔다는 남편의 마음이 문득 대견했다.
' 내가 매달 꽃 사준다고 했잖아~ 어때, 예쁘지? 꽃 들고 그대로 서있어봐. 내가 사진 찍어줄게. '
핸드폰을 켜서 들이미는 남편에게 뭘 사진까지 찍냐 핀잔을 주고 돌아서서는 내가 더 열심히 꽃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분명 남편이 들어오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꽃을 본 순간 모든 근심이 무마되어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꽃을 다듬어 꽃병에 놓아야겠다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 꽃을 꽃아둘 화병을 꺼내 닦고, 꽃을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두고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여전히 싱그러운 꽃의 포장을 벗기고, 화병 속 물에 잠길 부분의 이파리들을 자르고 시들한 꽃을 골라내고 고른 꽃의 끝을 하나하나 사선으로 다듬었다. 매일 조금씩 사선으로 다듬으면 꽃이 물을 흡수하는 부분이 많아져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곧이어 화병에 찬물을 반 정도 담고 얼음을 세 개 정도 넣은 뒤 락스를 작은 티스푼 정도 넣었다. 화병의 물에 락스를 약간 넣으면 생화의 줄기가 부패해서 냄새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싱싱하게 좀 더 오래 볼 수 있다. 나는 꽃이 시들기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 이 과정들을 반복한다. 자주 꽃을 받으며 생긴 나름의 노하우들로 이번 꽃 정리도 후다닥해서는 거실 테이블에 올려뒀다. 잠시 지나자 방향제를 뿌린 것도 아닌데 온 집안에 싱그러운 꽃 향이 잔잔하게 감돌았다. 꽃을 받은 날 집안 가득한 이 사랑의 향기를 난 참 좋아한다. 꽃이 피어있는 순간만큼은 나도 피어있는 기분. 꽃을 받고 나면 꽃이 핀 기간동안의 우리의 일상에 사랑이 가득하다. 마치 꽃다발이 가져다주는 마법 같다. 화가 나다가도 거실의 꽃을 보면 미소부터 지어진다.
물론 누구에게든 예쁜 꽃다발을 받는 건 언제든 좋지만, 꽃을 사기 위해 달마다 꽃집에 방문해 내가 좋아하는 꽃을 고르면서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행복해하며 사 올 남편의 마음이 담긴 꽃다발이 제일 기특하고 예쁘다.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나 또한 매일 아침 꽃이 더 오래 피어있기 위한 작은 노력들과 꽃이 시들 때면 말리는 번거로운 과정들을 기쁘게 맞는다. 이런 따뜻한 순간을 간직 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수고로움을 언제든 감수할 수 있다. 남편이 지키고 싶은 우리의 사랑을 기억하고, 남편이 오늘의 내게 건넨 마음을 늘 소중히 여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