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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Sep 09. 2024

마음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던 일

오전에 장을 보기 위해 읍내로 잠시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집 앞에 주차를 하고, 조수석의 장바구니를 꺼내기 위해 조수석 쪽 문으로 향하던 중에 내 차 옆에 까만 물체를 봤다.

순간 화들짝 놀래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자세히 보니 뒷다리가 축 쳐진 채로 까만 고양이가 힘겹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우리집은 읍내에서도 떨어진 첩첩산중이어서 길고양이도 보기 힘든 곳인데 왜 고양이가 여기 다쳐서 있는건지 의아한 것도 잠시,
조금 더 옆을 보니 핏자국이 있었다.
아직 피가 굳지 않은 걸 보니
아마 차에 치인 지 얼마 되지 않은 듯싶었다.
내가 다가가 상태를 살피니 눈을 뜨고 고개를 간신히 들고, 힘없는 목소리로 '야옹-' 탄식 같은 울음을 내뱉곤 뒷다리를 질질 끌며 나를 피해 내 차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곤 또다시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은 굶었는지 앙상한 뼈 사이로 배만 규칙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집에서 참치캔을 챙기고 큰 그릇에 물을 떠 왔다.
참치캔을 따서 얼굴 앞에 가져다주니 냄새를 맡나 싶다가 발로 캔을 밀어버렸다.
그럼 물이라도 먹어보라고 달래며 그릇을 내밀었는데 이번엔 그릇을 피해 차 안 깊숙이로 들어갔다.




그런 고양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보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한참을 주변을 둘러봤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차를 빼주는 게 나을까 싶어 차에 올라타다 말고 그래도 내 차가 세워져 있는 게 당장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땡볕에 주저앉아 차 밑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저 멀리서 사람 소리가 들리기에 다급히 뛰어갔다.
다행히 목소리의 주인공은 관리사무소 아저씨였다.
내가 고양이가 죽을 것 같다고 하니
'고양이가 죽어있다고요?' 하기에
'고양이가 죽지는 않았는데 죽을 것 같다'
말하곤 서둘러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아저씨를 안내했다.
날 따라온 아저씨는 고양이가 차에 치여서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말하곤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며 고양이 뒷덜미를 잡았다.
곧 죽을 것 같이 누워있던 고양이는 갑자기 많아진 사람들을 보곤 겁에 질린 눈빛으로 하악질을 하며 멀쩡한 앞다리를 허공에 휘두르면서 경계하다가
금세 힘을 잃고 가만히 아저씨의 손에 들려 멀어졌다.

이제 올라가란 아저씨의 손짓에도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고양이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다 먹지 않은 참치캔과 물그릇을 챙겨 집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한동안 베란다에 서서 고양이가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고양이가 사라진 자리에 핏자국은 여전했다.
그곳을 바라보며 내내 '내가 더 할 수도 있었던 일'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순간에
내가 더 할 수 있었던 건 없었지만 숨이 꺼져가는 채로 누워있던 고양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복잡한 감정에 까만 밤이 찾아올 때까지 그저 자리에 앉아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밤늦게 퇴근하고 온 남편이 왜 불도 안 켜고 있냐기에 낮동안의 일을 얘기하며 아마 지금쯤 고양이가 죽었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힘들어했다.
남편은 죄책감을 가지는 내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네가 고양이를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고양이의 곁에 잠시 있어준 것 만으로도 최선을 다한거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만 마음 아파하라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로 흘려보내야 한다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면 결국 너만 더 힘들어질거라고.



오늘 일은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내가 과거로 돌아가 고양이에게 있었던 사고를 막을 수도 없던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어쩔 수 없던 일에 죄책감을 느끼며 빠져있을수록 내 고통은 더 커질 뿐이라는 거다.
삶의 대부분의 일들은 오늘의 일처럼 갑자기 찾아와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나는 오늘 일처럼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에 힘들어하며 늘 두고두고 마음 아파했다.
그게 내게 고통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쩔 수 없던 일을 어쩔 수 없던 일로 잘 보내주는 건 오로지 내 몫이다.
부디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몰되어 내 마음을 아픔들로 채우지 않기를,
어쩔 수 없는 일에 내가 뭘 어쩌지 못한 게 잘못이라 절망하며 이제 그만 나를 괴롭히기를.




만약 오늘의 고양이에게 다음 삶이 있다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무서운 길이 아니라 곁에 함께 할 존재가 있는 따뜻한 집에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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