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랑스러운 회사를 떠나며,
2019년에 입사해 2023년 7월 중순을 기점으로 떠나게 되었으니, 지금 회사에서 약 4년을 일하고 떠나게 되었다.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스스로 결정하여 이직을 시도했고,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기쁘지 않아 마음이 복잡한 몇 주를 보냈었다. 아마 회사를 너무 애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이지만 그저 돈 받고 일하는 계약관계로 일하지 않았던 것 같다 - 혹은 그러지 못했었다. 내가 E회사(별칭으로 이렇게 쓰겠다)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개발에 참여한 제품의 “COVID19로 변화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Early Childhood Education의 보편적 보급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라는 비전은 회사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었다. 제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했다. 당연히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수두룩하지만, 그때는 아마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존경했다. 그리고 그들도 나를 그런 존중의 마음으로 대해주었다.
이직을 하게 되며, 같이 일했던 분들에게 최대한 직접 소식을 전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곳에서 배운 것이 많고,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이 ‘사람’들에게 배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더 이상 같이 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이내 다음 여정을 응원한다며 축복해 주었다. 물론, 일하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오라는 말도 함께. 퇴사를 앞둔 몇주는 밥과 간식을 하도 많이 얻어먹어서 몸무게가 늘었다…(?) 새로운 회사에 가면 어차피 고생해서 다시 다 빠질 거라고 했으니 기다려보는 것으로ㅎㅎㅎ
회사 다니면서 썼던 일기를 보면 ‘너무너무 스트레스받는다’, ‘잠을 못 자겠다!’ 등의 괴로움의 호소도 많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들을 기꺼이, 기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인내해 주고, 같이 걸어갈 수 있게 기다려주며, 나를 채워준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E회사에서 느낀 것들이 많아, 나중에 잊기 전에 몇 가지 적어보았다. 두서없지만….
요즘은 워낙 ‘워라밸’ 담론이 강해서 ‘일은 일이고, 내 삶은 삶이야’라고 그 경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내 주변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사는 회사일 뿐’이라는 말도 참 많이 한다 (나 자신도!). 물론 이 말은 대전제적으로 참이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회사의 꿈과 비전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 만드는 제품, 제공하는 서비스가 세상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이 큰 단위의 회사 전체의 비전/미션일 수도 있고, 팀의 목표와 같은 작은 단위에서의 비전/미션이라도 사람들은 거기에 ‘동참’한다는 느낌을 간절히 바란다. 되려 ‘회사 일은 회사의 것일 뿐 나의 꿈과는 달라’라며 말하는 것이 그 비전/미션을 찾지 못했을 때 버티기 위한 전략인 경우도 꽤 보았다.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꿈과 비전이라면, 깨어있는 시간의 반 정도를 쓰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는가? 삶의 의미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 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E회사는 그걸 매우 잘하는 회사였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유저 후기 보지 말자는 말을 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유저 후기를 보면 스스로를 갈아 넣어 열심히 일하게 되니까 말이다(ㅎㅎ). 금융치료보다 더 효과가 세고 정확한 것이 ‘난독증이었던 우리 아이가 E회사 제품을 쓰면서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와 같은 후기였다. E회사에는 그런 피드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일을 할 때, 충분히 지쳐있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니 또 애들을 이렇게 쓰게 내버려 두긴 좀 그렇잖아….’ 하면서 사서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물론 이건 나의 팀에 한정된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런 태도로 만든 제품이니 제품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졌을 때 ‘충분’한 지는 모두 다르다. 각자가 가진 정보의 양이 달라서일 수도 있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나는 우리 팀과 3-4년 정도 같이 합을 맞췄고, 더 오래 계셨던 분들끼리는 5-6년 동안 함께 일하셨기 때문에, 많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어느 정도 ‘착착!’ 알아차리는 멤버 구성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의 맥락은 무엇인지를 포함하여 굳이 아는 이야기도 함께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말을 하면서 서로의 생각과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은 그 이후의 일을 진행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역할했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으로, 특정 업무를 요청할 때, 입사초기에 나는 ‘이런 일을 해주세요’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특정 부분을 수정해 달라고 했을 때, ‘이걸 이렇게 수정해 주세요’만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이게 이런 맥락이 있어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말하려고 한다). (옆에서 그렇게 일하길래 나도 따라함..) 이 경우 일을 받은 사람이 이해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효능감이 높아지기도 하고, 프로 일잘러인 동료들이 더 나은 수정방안 혹은 더 쉬운 수정방법을 제안해주기도 해서 좋다. 바쁠 때는 그냥 특정 일을 해달라고 툭 던지는 게 훨씬 편하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버커뮤니케이션이 훨씬 낫다는 것을 일하면서 많이 느꼈다.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그 사람이 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사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기도 하다. 돈 받고 일한다고 그 일을 모든 사람들이 잘해주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당연한 것을 당연히 여기며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서로에게 고마운 것은 많지만, 사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오랫동안 합을 맞췄기 때문에 당연히 알 거 같지만, 그래도 ‘굳이!’ 말해주는 것이 훨씬 좋은 경험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칭찬과 감사의 경우 구체적인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너무 자주 떠돌아 꽤나 비즈니스적으로 느껴지기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 있는 외부팀들과 합을 맞출 때는 마일스톤이 끝날 때 각자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하려고 했고, 덕분에 더 잘 협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사와 마찬가지로 미안한 것, 죄송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리더의 경우에는 거의 ‘미안합니다 봇’인데…(ㅎㅎ) 안 그러고 싶지만(?) 일단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면 마음이 한 단계 누그러지곤 했다. 어려운 점을 감정이 아닌 일의 관점에서, 즉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마법 같은 말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덕분에 하고 있는 일에 어려운 점이 있을 때 끙끙 앓면서 숨기기보다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소통은 더 투명해지고, 문제 해결은 빨라졌던 것 같다.
일을 하면서 내가 실수했을 때 ‘죄송하다’는 말을 용기 있게 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조직에서 배운 것이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우습게 보일 수 있다, 라는 말이 세상에는 많고, 그것이 꽤 사실인 세상이지만, E회사의 사람들은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잘했다. 옆에서 보면 딱히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닐 때도,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가 한 발 물러섬으로써, 같이 두 발을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그것을 미끼로 삼아 치사하게 구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하지만 치사하게 구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르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나타남으로써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물러섬으로 더 큰 한 걸음을 걷고자 했던 사람들 덕분에 나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이 덜 무서워졌다.
최근에 정희진 선생님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권력의 두 가지 종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향력으로서의 권력과 책임으로서의 권력. 권력을 영향력으로 인지하는 것보다 책임으로 인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돌아보면 E회사에는 권력을 영향력보다 책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사회에서 리더보다는 팀멤버인 경우가 많은데, 책임지지 않는 리더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보았다. 특히 성과는 자기의 것으로 가져가고, 잘못은 팀원의 것으로 돌리는 경우가 꽤나 비일비재했다. E회사에서는 (적어도 우리 팀에서는) 그런 경험은 해보지 못했다. 나의 실수는 대부분 자기의 것으로 가져갔고, 성과는 우리의 것으로 돌려주었다.
여전히 기억에 나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는 어리바리한 상태였다. 미국과의 시차 때문에 그때의 회의는 7시인가 8시에 시작해서 몽롱했고, 게다가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라 긴장도가 더 높은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논의를 하던 중에 CEO가 꽤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Who made this decision?”. 응??? 잠이 깨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 일의 실무적인 관리는 내가 맡고 있었고, 내가 대답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머릿속은 혼란했고, 이게 누가 결정을 딱 내렸다기보다는 같이 논의를 하다가 된 거 같은데, 근데 그게 뭐였지, 어떻게 된 거였지? 하며 머릿속이 시끌벅적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회의에 잠깐 침묵이 흐르는데, 팀리더가 말했다. “It’s me.” 그러면서 그 결정의 맥락을 설명했다. 그 말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이 일화는 아주 단적인 일화이지만, 나의 리더는 어떤 결정에 대해서 뒤로 숨기보다는 앞으로 나서서 책임을 지는 리더였다. 리더가 그래서 그런지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다 그래서, 자기가 맡은 일들은 자기가 책임을 졌다. 나는 그걸 고스란히 보고 배웠다.
많이 알려진 명제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잘하는 조직은 얼마나 있을까? E회사는 (적어도 우리 팀은) 그게 되었다. 실수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그랬어?’, ‘왜 그랬어?’라는 질문보다는 ‘자, 어떻게 해결하지?’를 늘 먼저 물었다. 내가 실수 당사자일 때, 이런 반응 덕분에 실수를 숨기거나 대충 수습하기보다는 용기 내서 드러낼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사실은) 옹졸한 나 역시도 동료들에게도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태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구나 실수한다. 나를 포함해서’라는 마음이 모두에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조직 자체가 신뢰 기반으로 일하는 조직이기도 했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단순히 발생한 문제해결에서 멈추지 않고 과정이나 구조적으로 이슈가 없는지도 살펴보곤 했다. 한 번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데,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누군가가 물었다. “혹시 이게 어디에서 발생했을까요?”. 실질적으로는 이 질문은 누가 실수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특정 사람이 일을 가지고 있는 지점에서 이슈가 발생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게 어디에서 발생했을까요?”라고 물으며 뒤에 이 말을 붙였다. “누구의 문제인지 알려고 하기보다는, 어떤 영역에서 이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면 그 지점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과정을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 논의하고 싶어서 여쭤봅니다.” 나는 그 설명이 참 좋았다.
E회사에서는 분명히 내 실수였을 때도, ‘이런 걸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주지 못한 내 탓이오’, ‘같이 살펴봐주었어야 했는데 혼자 보게 해서 미안하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그래!’ 보다는 ‘다음에 잘해봅시다.’라고 말해주었던 사람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줬는데도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건 그냥 내 잘못임 힣헷)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갈등이 있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경우 어떤 사안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각각의 이야기에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한쪽으로 무작정 치우치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균형을 맞추는 모습이 좋았다. 설사 그러한 태도가 나의 의견에 대해 온전한 지지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그게 더 좋았다.
누가 말을 잘한다고, 누가 나랑 더 오래 같이 일했다고, 와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말만 듣지 않았다. 나와 다르더라도 “그 사람 말도 이런 면에서는 일리 있어”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기억들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설사 이 사람이 다른 사람과 더 가깝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되게 큰 거 같아 보이거나 할 때도 저 사람이 내 의견도 들을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었다.
관계가 얽히기 마련인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지저분해져서(?) 회사에 이골이 난다는 사람들도 많고, “저 사람은 저 말만 들어” 라며 화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균형 잡힌 태도 덕문에 E회사에서 일할 때 불필요한 인간관계로 일에 쓸 에너지를 뺏기는 경우가 적었다.
아참. 여기서 나는 ‘중립‘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는데, 중립과 균형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중립은 거짓이고, 불필요한 중립은 도피인 경우가 많다. 균형 속에서 확실한 자기 의견을 세우는 것은 일에서 중요하고, 그게 꽤 잘 되는 조직이었다.
-
이 외에도 배운게 많지만 일단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보았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배움의 연속이라는 걸 E회사에서 많이 느꼈다. E회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느낀 위에 적은 태도들이 나에게도 스며들어있길 바란다.
20대 초중반 때는 비영리 조직에서 일하고 활동하면서 만난 분들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에 대한 태도를 많이 배웠다. 여전히 그분들에게 배운 것들이 내 삶의 큰 힘이 되고 있다. E회사에서 배운 것들도 앞으로의 ‘일하는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고, 그 배움을 E회사의 훌륭한 분들과 해서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