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기

그리고, 지식이라는 이름의 위안

by 떨뇌지

어느 날, 남편이

내 글조각들을 발견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 사이비에 빠지고 그런 건 아니지?"



그는 언제나

종교와 성경,

인간관계와 정치, 경제,

외국어와 사회 이슈까지

교양 강의를 하듯 말을 이어간다.


시스템이 배급한 정답을 짹짹거리는 세계 안에서

그는 아주 잘 살고 있었다.


그런 남편이

내 글을 보고

처음으로 의심을 품었다.


"혹시... 책을 쓰려는 거야?"

남편은 나와 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

질문은 늘 거기에서 멈추고,

그는 그저 견고한 세계 안에 머물 뿐이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나의 불온함이

글 속에 확실히 드러나 있다는 것을.


나는 말한다.

사유한다.

관찰한다.

질문한다.




현대의 사람들은

지식을 쇼핑한다.


새로운 정보를 사고,

쌓고,

즐긴다.


하지만 물건이 넘치는 집에

정리가 불가능하듯,

머릿속 지식이 넘치면

정신은 어수선해진다.


스스로 정리할 수 없어

정리정돈 전문가를 찾듯,

우리는 사유의 통제권을

시스템에 외주 준다.


전문가가 정해준 동선대로

물건을 배치하면

일시적인 안온함은 얻겠지만,

결국 나는 내 집에서조차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안 되는 사람'으로 박제된다.




이런 무력함은

지식 쇼핑에서도 반복된다.

알고리즘이 배급하는 가짜 확신을 먹으며

'왜?"라는 질문 없이 흡수한 정보는

그저 죽은 지식일 뿐이다.


대학 시절 강의 시간에

교수의 눈은 매우 반짝거린다.

깊은 사유의 결과물을 전달하는

주체의 기쁨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발표는

어딘가 기계적이다.

얼굴은 회색빛이고,

말은 사유의 여과 없이

시스템의 명령어를 복제한다.


사유를 적출당한 채

성실함만 남은

'현대판 아이히만'들의 초상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길가에 핀 작은 풀 한 포기조차

궁금해하는 마음에서

사유는 시작된다.


하지만 효율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왜?"라는 의문은

비용 낭비적 도발로 치부된다.


"그냥 그런 거야."

"일단 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아."

"그냥 외워."


이것은 공부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이야기다.


빽빽한 교회 십자가 아래에서

원죄를 재현하듯,

우리는 여전히 시스템의 매뉴얼을 맹신하며

사유방기의 죄를 짓고 있다.


내 삶에 "왜?"라는 질문이 사라지니

내가 사는 내 삶인데도

정작 나 자신은 보이지 않는다.


그 텅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자꾸 타인의 삶을 훔쳐보며 비교한다.


내가 입고 있는 것이

시스템이 배급한 죄수복인 줄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