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란 게 있기나 할까?

독서기록장쓰기- 책 읽은 동기 1

by 같음


붉은빛 강렬하게 내 눈을 사로잡은 표지!

유니크한 제목, 감성을 자극하다

친구 따라갔다 얻은, 삶의 진리



학교에서 요구하는 독서기록장 혹은 독서감상문의 양식을 보면 "난 절대 절대 중요하니 날 빼먹을 맘이면 아예 시작도 말라"는 듯 첫 번째 항목으로 떡 하니 등장하는 것이 바로 '책을 읽은 동기'다.

'동기'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작 열기를 자극한다.

그저 다음 주까지 수행평가로 독서기록장을 제출하라고 하니 얼떨결에 골라 집은 책이니까. 언제 샀는지도 모르게 집에 굴러다니던 책을 덥석 집은 것이니까. 중학교 입학했다고 엄마가 필독도서를 왕창 사주셨으니까. 독서기록장 쓰기 편하다고 친구가 추천해 줬으니까. 새로 책을 읽을 시간은 없고 언젠가 읽었던 책의 기억을 더듬어 쓰는 거니까. 뾰족한 동기랄 게 있을 리 없다. 때문에 학생들은 있지도 않은 극적인 '동기'의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해 창작의 고통에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렇게 아이들은 앞으로 수많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마주하게 될, 끝나지 않을 '동기'와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책읽은 동기 좀 그만 물어봐. 숙제니까 읽었지. 무슨


영민한 아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표지' '제목' '추천자'를 언급하는 것이다. 한 가지만 썼다가는 '느낌'이니 '생각'을 묻는 다른 항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요된 '공란'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모두 동원해야 한다.





강렬한 붉은빛의 표지에 시선이 머물렀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의 뒷모습이 내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 놓았다. 그런데 '살인자'라니. 살인자의 추악한 기억을 우리가 궁금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이 책을 건넨 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기억을 쫓아가는 동안 예상치 못한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될 거라고도 했다. 그렇게 첫 페이지를 펼쳐 든 후, 나는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about '살인자의 기억법')


그런데 말입니다.(feat. 그알)

정말, 정말, 정말이지, 선생님은 왜 '책을 읽은 동기' 따위를 묻는 것일까. 아이들이 숙제에 떠밀려, 어쩌다가 우연히, 어떤 필연성 없이 책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항목에서 학생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

관행적으로 써넣은 항목이 아니라면, 쇼핑하듯 책을 고르지 말라는 무거운 경고가 숨어있을 수 있다. 이는 태곳적부터 잘못 형성된 독서 습관부터 뜯어고쳐야 할 노릇이다. 각 분야별 전집을 몇 질 놓아야 하고, 필독 도서는 무조건 사수해야 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의 작품을 꼭 읽어 보아야 한다는 그런 '내'가 아닌 '남'의 기준으로 선택된 '동기'의 습관을 묻는 것이 아닐 테니까.


작가 김영하의 작품은 늘 무겁다. 특히 언젠가 방영된 드라마 제목과 똑같은, 그러나 내용은 전혀 딴판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다가 토악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미쳐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기'와 '절망', 그리고 어른과 사회의 더러운 이면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럼에도 그의 신작 소식을 듣자 다시금 그가 바라보는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이 궁금해졌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엔 여전히 출구가 없는 것일까? (about '살인자의 기억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