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운 쑥튀김
봄이 오면 얼었던 땅을 들석이며 흙이 깨어난다.
나무는 아직 잎눈을 꼭 다물고 있지만, 흙 속 풀들은 부지런히도 움직인다.
그중에서도 쑥.
따뜻해진 바람을 타고 밭두렁 아래,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부터 쑤욱 솟는다.
이제 다 지나갔다고 움츠린 땅을 토닥여주는 듯.
어렸을 적, 할머니를 따라 쑥을 캐러 다녔다.
무뎌진 과도 한 자루와 빨간 바구니, 헌 비닐봉지를 각자 하나씩 주머니에 넣고 빈 밭으로 간다.
그리고 할머니는 잘 자란 쑥잎 하나를 들어 보여주시며 이런 것을 캐야 한다. 고 하셨다.
쑥은 어린것일수록 향이 진하다.
줄기는 새끼손가락 마디처럼 오동통하고, 잎엔 아침 서리처럼 하얀 솜털이 내려앉아 있는 것.
때가 늦으면 질겨지고, 너무 빠르면 향이 덜하다.
한 해를 통틀어 며칠 되지 않는 그때를 놓쳐선 안 되는 것이다.
그 시기는 시계가 아닌 꽃이 알려주는데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을 때가 적기이고, 철쭉이 피면 조금 늦은 거다.
쑥을 캐는 일은 봄의 온갖 소리를 등에 지고 걷는 일이다.
흙냄새와 봄바람, 삐걱이는 무릎에서 나는 작은 소리와 쑥을 찾아 내딛는 한 걸음마다 '아이고' 하던 소리들.
마른풀들 사이에 삐죽 솟은 쑥의 허리를 '똑' 끊는다. 엄지와 검지로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며 잎을 털듯 전잎을 정리해 바구니에 담는다. 부지런해야 집에 가서도 손이 수월하다. 가끔 쑥밭에 냉이가 뒤섞여 올라오면 그것도 함께 캐지만, 비닐봉지는 따로 챙겨가서 넣으면 좋다.
무엇보다, 쑥 향.
데쳐서 헹구고 나면 비로소 살아나는 맑은 향이 좋다. 나는 늘 쑥튀김이나 쑥버무리부터 해 먹는다.
남은 것은 쑥국을 한 솥 끓여 밥 한 공기를 만다.
크게 한 수저를 떠서 김장철에 박아둔 섞박지를 올리고 야무지게 입안 가득 한 입.
그리고도 남은 것은 쑥떡으로 저장해 두면 일 년이 든든하다.
삶아서 얼려둔 쑥을 여름이나 가을에 꺼내 먹으면, 봄이 통째로 얼려져 있다가 다시 풀려나오는 것 같다. 봄 향이 반가워 마음이 상쾌해진다.
쑥은 흔한 풀이라 누구나 어릴 적 한 번 쯤은 들판을 걸었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쑥을 뜯었을 것이다.
봄을 데리고 오는 쑥
벚꽃보다, 나는 쑥을 더 기다린다.
쌀랑이는 바람에 맞서며 봄을 알리려 녹은 땅을 들고 일어나는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