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이대로 괜찮은가요?
책 속의 한 문장을 찾아 나서다
엄마가 된 후 나의 삶은 멈추어버렸다. 육아와 집안일이 전부인 일상. 눈을 비비며 겨우 식탁에 앉은 첫째 아들의 입에 한 숟가락이라도 더 넣으려 애를 썼다. 삐죽 올라선 둘째 아들의 머리에 물을 묻히고 삐져나온 속옷을 가다듬었다. 양 손 가득 두 아이의 무게를 느끼며 아침 공기를 갈랐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헐레벌떡 출근한 직장에서는 겨우 주어진 일만 할 뿐이었다. 분명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열정이라는 단어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지루한 날들의 연속. 쳇바퀴 도는 일상 속에 그나마 아이들이 잘 자라주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즈음 남편은 못다 이룬 꿈과 목표를 향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블로그에서 시작한 친구의 쇼핑몰은 대기업과 콜라보를 할 정도로 커져 여성 CEO로 거듭났다. 또 다른 친구는 작은 공부방을 키워 상가에 큰 학원을 차렸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는 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제 길을 찾아 성큼성큼 나아갔다. 오직 나만이 제자리걸음이었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곱은 빨리 달려야 하고.”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이 한 말이다. 나는 힘껏 달리고 있지 않았으니 제자리조차 지키지 못한 게 아닌가? 멈춰있는 게 아니라 뒤처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후회, 다른 삶들에 대한 동경으로 내 앞의 삶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영영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불안하고 초조했다.
척추 뼈와 치아 등 내 몸의 모든 단단한 부분들이 으스러지고 부러지는 꿈을 꾸었던 어느 날 아침, 허리가 끔찍할 정도로 아팠다.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꿈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긴 병가가 이어졌다.
그즈음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허리가 아파 침대에 누워 지내는 내가 못 견디게 한심하던 참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책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와 내가 하나로 겹쳐보였다. 그는 회사와 일 밖에 모르던 성실한 사람이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빚까지 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5년간 아프지도 못하고 묵묵히 일을 해왔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하다니!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어쩌다 그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신세가 된 거지?’ 그와 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나'가 흐려진 삶을 살았다는 것. 그런 상실감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병들게 마련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가족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온 식구가 나를 대신해 육아와 집안일을 거들었다. 하지만 그 땐 몰랐다. 가족에 대한 고마움보다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패배감과 비참함이 컸다.
이렇게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며 사느니 그냥 콱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때 유명 연예인의 비보를 접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 허리 아프지 마세요. 사랑해요." 일곱 살 아들이 꼬부랑글씨와 하트를 가득 그려 넣은 편지를 건네주었다. 나쁜 마음을 먹은 게 미안해서 울고 또 울었다. 울다가 지쳐 잠들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자 내 인생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변해야 해. 지금 당장.'
▶독수리는 다시 난다
ⓒ Flo Maderebner, 출처 Pixabay
언젠가 읽은 독수리 이야기가 퍼뜩 떠올랐다. 독수리는 태어나 40년을 살고 나면 중대한 갈림길에 선다. 앞으로 30년을 더 살기 위해서는 새 부리와 발톱, 새로운 날개가 필요하다. 기존의 부리는 없애야 한다. 부리가 송두리째 빠질 때까지 바위에 수없이 쪼아대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다음은 발톱이다. 새로 돋은 부리로 노화된 발톱을 전부 뽑아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새로 난 부리와 발톱으로 헌 깃털을 모두 뽑고 몇 달간 새 깃털이 나길 기다린다. 눈물겹도록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나도 곧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대로 주저앉아 신세한탄만 할 것인가, 새로운 삶으로 비상할 것 인가. 선택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그 동안 묵은 감정과 나쁜 습관들이 점점 커져 내 삶을 뒤흔들고 있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뭐라도 해야 한다. 다시 삶으로 떠오르기 위해 독수리처럼 처절한 시간을 보내겠노라. 혼자만의 고독한 준비를 이겨내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제일 먼저 손에 든 것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허리 관련 건강 도서로 시작했다. 허리가 낫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가는 시간이 되었다. 책 속의 문장들이 살아 나와 아픈 나를 다독이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다. 이 시련이 나를 더 키울 것이다. 괜찮다.’
더는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위로해 줄 수 있었다. 온통 밖으로만 향해 있었던 시선이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왔다.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나와 내 삶을 먼저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충분히 잘 해왔다고 칭찬을 건넬 수 있었다. 내가 먼저 나를 보듬고 나의 삶을 긍정하기 시작하자, 모든 미움과 원망, 불안과 초조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들도 옳고, 나도 옳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을 제 속도로 살아간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현재를 존중하게 되었다. 책은 계속해서 내게 말해주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살아가라고. 중년의 삶도 계속해서 성장해야 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그렇게 ‘책 속의 한 문장’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또 어떤 문장이 나에게 힘을 줄까? 매일매일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조용히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고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죽을 것처럼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오는가? 내가 괜찮은 건지 그렇지 않은지조차 모르겠는가?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면 그렇게 살아도 좋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바뀌고 싶거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나의 변화를 지켜보시라. 앞으로의 글들이 분명 도움을 줄 것이다. 당신이 새로운 인생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곁에 있겠다.
“삶을 사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 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