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다. 불안함과 초조함을 떨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책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고,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 계속 책을 읽으면 찬란한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읽은 책들이 자꾸만 쌓여서 책장을 더 들여야 할 정도로 책이 불어났다. 하루에 한 권, 많게는 서너 권까지 읽어 내려갔다. 예전에는 시간을 때우는 킬링 타임 독서에 가까웠다. 그러나 다시 시작한 독서는 살기 위해 온 마음을 바쳐 변화를 이루고 싶은 성장 독서였다. 더 나아가 내면을 들여다보고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독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살펴주는 이야기, 복잡한 경험의 미로를 자신 있게 걸어가게 해 주는 이야기, 대안적 인생을 꿈꾸게 해주는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인생에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한 대응능력을 회복한다. 우리는 한결 새롭고 활기찬 기분, 또 자신만의 결말을 꾸릴 수 있다는 에너지를 느끼며 책을 내려놓게 된다. 우리는 남들의 정돈된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빠진 갈등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한층 넓힐 수 있다. 문학은 심리적, 정신적 건강의 수단이다.”
조셉 골드의 『비블리오 테라피』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다. ‘비블리오’는 그리스어로 '책'이며, '비블리오 테라피'는 '독서치료'를 뜻한다. 독서를 통해 일상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공간으로 떠날 수 있다. 속 시끄러운 일상과 소모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 그 자체로 독서는 치유의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독서를 마냥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 후 다시 찾은 일상은 전보다 더 명쾌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해소된 감정으로 눈앞의 시간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책 읽기는 도피라기보다 재충전에 가까운 행위이며, 더 나아가 '성장'을 위함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에 나오는 문구 또한 그 맥을 같이 한다. 독서란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성장을 이루기기 위해서라는 것. 이러한 책들을 읽으며 독서의 힘을 믿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현실이 된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워진 인생을 살고 싶다는 강력한 마음이 일렁였다.
사실 독서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불우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극적인 변화가 찾아올 수 있었다 여긴 것이다. 나는 그들에 비해서는 살만한 게 아닌가? 나의 불안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을 거슬러 가다 보니 스물한 살의 내가 있었다.
▶책의 가치는 나에게 달려있다
우리 집은 먹고살 만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엄마와 아빠가 몇 달 간격으로 거의 동시에 암 환자가 되셨다. 아빠는 급성 백혈병으로 10개월의 투병 끝에 결국 돌아가셨고, 집에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학생 두 명과 난소암 항암 치료를 막 끝낸 엄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언제고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나는 노후를 챙겨 드릴 친정 엄마도 계시고, 아직 장가를 못 간 남동생도 있다. 물론 엄마와 동생은 각자의 직업이 있고 나를 더 걱정하지만?! 장녀라 그런지 그 모든 것들이 내 책임인 것만 같다. 두 아들의 교육과 결혼 그리고 우리 부부의 노후도 남아 있다.
앞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된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빈자에 가까워질 확률이 크다. 물론 '부'에 초점을 맞추어 달라진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아니다. 하루를 살아도 생기가 넘치고, 주어진 내 앞의 생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오롯한 나의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었다. 완벽하게 달라진 내 모습을 꿈꾸며 집안 곳곳에 나의 꿈과 책에서 만난 동기 부여 글귀들을 써 붙이기 시작했다. 나를 성장시키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에서 온 '성장 독서'는 한층 치열해졌다.
그동안의 독서는 저자에게 공감하고 감탄하는 정도였다. 그 결과 내 삶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 것으로 온전히 소화시키기 위해 뜯고 씹고 맛보며 음미한 후,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저자의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생각과 신념들이 무수히 쌓여야 내 인생이 바뀐다.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과 완독의 기쁨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과 문구를 옮겨 쓰고, 내 생각을 덧붙이며 독서 기록을 남겼다. 읽었던 책도 지나치지 않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이 다시 읽을 때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필사와 재독을 시작하자 어느새 반복되는 내용들이 머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고, 그것을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소설, 자기 계발서, 인문, 사회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 편이다. 간혹 내가 소설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떤 사람은 소설책을 읽는 게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 특히 남편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다. TV 드라마를 보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고, “독해력과 상상력이 길러지겠지.”라고 얼버무렸을 뿐이다.
그때 톰 피터스를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는 피터 드러커와 함께 현대 경영의 창시자로 불리는 경영 구루 중의 구루다. 현대 경영의 창시자라니! 경영학 책만 주구장창 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즐겨보는 주 장르는 소설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경영학 서적들은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은 위대한 질문을 던진다.”라며 소설을 읽는 이유를 밝혔다.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의 이면과 인간관계들을 소설을 읽으며 배운다는 것이다. 그에게 소설은 그 어떤 경영 서적보다 가치 있는 책이었다.
이 사례를 접하고 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 쓸모없는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책의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만이 있는 것 아닐까?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 각종 학습 만화가 인기다. 나는 학습 만화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학습 만화라 할지라도 학교에서는 읽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배우는 것이 있다면 어떤 책이든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종 "이 책은 쓰레기야!"라고 무자비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책을 읽다가 '이 정도 책은 나도 쓰겠다'라고 느낀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책이 무가치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SNS에 글 하나 올릴 때도 몇 번을 읽고 고치는지 모른다. 한 권의 책 속에 단 하나라도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문장을 만났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 문장이 확장되어 또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어찌 그 책을 쓰레기라 폄하할 수 있겠는가? 책뿐만이 아니다. 매사 어떤 일이나 사람과 마주할 때조차 하나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렇게 되고야 만다.
책을 읽으면 정말 인생이 달라지느냐고?
내 대답은 예스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