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말 마지막 음악 시간, 아이들과 조금 특별한 이야기로 수업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BTS의 성공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이들에게는 어떤 '꿈'이 있는지 물었다. 열한 살, 꿈 많은 아이들답게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꿈을 말했다. 그 당당함이 귀여웠고 무한한 가능성이 부러웠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꿈이 없다며 시무룩해하거나 꿈 따위 무슨 상관이냐는 듯 무심한 표정의 아이들도 있었다. 꿈을 말했던 아이들의 100%는 명사형의 꿈, 즉 특정 직업을 꿈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 부분이 안타까워 '진짜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막연한 동경이나 부모의 권유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어떤 시련 속에서도 끝내 이루고 싶은 무엇. 최고를 꿈꾸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다해도 끝까지 하고 싶은 무엇.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면 일상의 작은 경험들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찾아보자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오늘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원하던 직업을 가지고 한동안은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배운다. 그러다 곧 슬럼프에 빠진다. 내가 그랬고 나의 남편이 그랬다. 직업으로서의 꿈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소명 의식을 품은 꿈이라야 삶이 지속된다. 단순한 호기심, 기대, 소망으로 이루어진 꿈은 금방 사그라들고 만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꿈을 꿔야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그 꿈에 몰입해서 끝까지 갈 수 있다. 진정한 꿈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이 정해주는 꿈, 유행처럼 따라가는 꿈이 아니라, 내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꿈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태어나 이 세상에서 하기로 되어 있는 소명 말이다. ‘내가 이 지구별에 왜 왔을까?’ 무엇을 위해 지구별에 오게 된 것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자기 속에 있는 진정한 열망을 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 꿈이 온전한 자신만의 꿈이며 삶을 변화시킨다.
나의 경우 왜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꿈꾸었는지 되돌아보았다. 태어나 10년을 외갓집 2층에 살았다. 그때 선생님이셨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외할아버지는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그런 외할아버지가 참 좋았다. 제자였던 언니, 오빠들이 졸업을 하고 가끔 외할아버지를 찾아뵈러 집으로 왔다. 외할아버지는 나에게만큼이나 학생들에게도 좋은 분이셨나 보다. 함께 과자를 나눠먹고 화기애애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많이 찍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신규 교사로서 몇 년간 열정을 쏟았다. 사비를 털어 학급 문고를 채우고 고학년이어도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다. 대학원을 다니며 아이들이 학교 수업 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주인 의식을 갖고 더 즐겁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연구했다. 성과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보람 있고 의미 있는 나날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며 많이 예민해졌고 알 수 없이 자주 울적해졌다. 주말이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학습 자료를 모으고 새로운 한 주를 기쁘게 시작했다. 하지만 남편은 지독한 집돌이였다. 연애할 땐 정말 몰랐다. 설상가상 임신 초기 하혈로 안정을 취해야만 했고 정말 집에만 박혀 지냈다. 그 때 만난 1학년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해주지 못해 종종 마음이 아린다. 이후 육아 터널을 거치며 내 아이마저도 사랑으로 감싸 안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스스로에게 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냥 꾸역꾸역 일감을 해치우듯 하루하루를 살았다. 모든 육아와 가사가 나에게만 짐 지워지는 상황 속에서 결혼을 후회하기도 했다.
▶ 삶의 가치 찾기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나의 소명이 꺾였다. 나의 꿈이 이 정도로 가벼웠던가. 한없이 흔들리는 내가 싫었다. 내가, 내 삶이 더 단단해지길 바랐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1일 1독 6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다행히도 예전처럼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여 휘청거리지 않는다. 지인 중에 똑같은 육아 휴직 상황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이 많다. 얼른 육아 휴직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여긴다.
그런데 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쉽다. 매일 더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예전의 나와 정반대의 모습에 나도 놀란다. 시간을 쪼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향기로운 문장들을 곁에 둔다. 동시에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한다. 진행 중이지만 다섯 가지 정도로 내 삶의 가치도 정립해 보았다.
첫 번째는 '그릿'이다. <그릿>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재능보다는 ‘열정’과 ‘끈기’가 중요하다는 내용인데 그것이 바로 ‘그릿’이다.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주변 모든 사람들을 바라볼 때 한계를 짓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두 번째는 '공감과 소통'이다. 귀 기울여 듣고 진심 어린 마음을 주고받기를 원한다. 위대한 사람들 곁에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아까지 않는 마음의 조력자가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기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긍정적인 말과 미소로 회답하려 한다.
세 번째는 '긍정과 감사'이다. 이 두 가지만 있다면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반대로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긍정과 감사'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어떤 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자기 전에 ‘감사 일기’를 쓰다 보면 주어진 하루가 새삼 기적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네 번째는 '열린 마음'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편협한 사고와 고정관념은 성장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옛 것을 배척하지 않는 한편 늘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유지한다. 사람도 사고도 높고 낮음 없이 받아들이면 그 모든 것들이 배움으로 가득함을 알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찰'하는 삶이다. 나를 돌아보고 늘 새로이 깨우치는 삶은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성찰을 위해 짧더라도 명상을 하거나 오롯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은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게 돕는다.
이 모든 삶의 가치를 그러모아 되새김질 하자, 나의 꿈이 선명해졌고 하루하루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만은 더이상 고꾸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제는 그냥 '교사'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삶’을 위한 '라이프 코치'로서의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내가 독서를 통해 변화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북 큐레이팅을 하면서. 이미 독서 모임이나 지인 혹은 친구를 통해 책 추천과 소개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이들과 동료 혹은 학부모로 그 대상을 확장해 보겠다는 포부가 생겼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도 마지못해 학교에 가는 날이 많았는데 이젠 서로 배우고 도우며 함께 성장하기를 꿈꾼다.
이렇게 매일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사색과 실천을 이어나감으로써 삶이 더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며 감사 일기를 쓰고, 짧은 명상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본다. 탁월함은 일상의 평범함을 매일 같이 반복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꿈은 꾸고 있는가? 모두가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당장 꿈을 찾는 것이 막연하다면, 먼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모습을 떠올려보자.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을 계속해서 가려내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여러분의 꿈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미 이루어져 있음을 생생히 떠올리며 온전히 믿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꿈을 멋지게 이루어 온전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내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다만 발견하지 못했을 뿐. 간절하고 치열하게 꿈을 찾고 꼭 이뤄내길 바란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잠재력을 발견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 Stokpic,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