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하는 독서가 진짜다

by 정예슬

“나 왕년에 책 좀 읽었어.”


아마도 그건 아이 수준의 오락성 독서일 가능성이 크다. 더 중요한 건 예전이 아니라 요즘도 책을 읽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 마음이 아팠던 사람이 우울증 관련 책을 읽다가 심리학 공부를 깊이 하게 되어 그 분야에 정통하기도 한다. 꼭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배우고 익혀서 특정 자격증을 따야만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다.

피터 드러커는 3년 동안 한 분야를 정해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고 말했다. 의지만 있다면 도처에 널린 수많은 콘텐츠들로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대학의 전공과 무관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앞으로 AI라는 인공지능로봇의 활약으로 우리가 말하는 소위 전문직이라는 것이 위상이 온전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많다. 그러나 공부 습관과 배움에 대한 의지는 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무언가를 쉽게 배우고 익히며 적응력을 키우는 일에 ‘독서’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지금부터 읽는 책, 지금부터 하는 공부가 진짜다!

책을 읽다 보면, 본인에게 특히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꿈이자 실현될 미래다. 여러분은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가? 만약 베이킹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관련 책을 읽게 될 것이다. 당장 베이킹 도구를 사서 새로운 메뉴들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들 테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럴 것이다. 가짜 꿈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그건 꿈이 아니라 가벼운 호기심이나 스치듯 잊혀버릴 공상 정도일 테니까.

물론 책을 읽어도 인생을 바꿀 주제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더 많이 읽고 경험치를 키워야 한다. 나 역시 여러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다 보니, 언제 내 심장이 강하게 뛰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특히 자기 계발서든 소설이든 '주인공이 시련에 마주쳤을 때 포기하지 않고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면 심장이 미쳐 날뛴다. 누군가는 자랑이니 허언이니 하며 자기 계발서를 싫어하고, 그런 건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 아니냐며 부정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만나면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울고, 장하고 기특해서 운다. 누군가의 변화와 성장이 나를 미치게 뒤흔든다.



▶ 삶의 의미를 찾아서


가까운 지인이 유치원 임용 고사에 합격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공유해본다.




”축하해~~ 어떻게 애 키우면서 그렇게 공부를 한 거야? 정말 대단하다!!“


“언니, 나 00이 재우고 새벽 4시까지 공부했어요. 세네 시간 겨우 자고 일어나서 애 아침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또 그때부터 아침도 안 먹고 공부하고... 어린이집에서 00이 데려오면 놀아주다가, 애 저녁 먹이면서 나는 첫 끼를 먹었어요. 그리고 00이 잠들면 또 공부하고.. 무한 반복. 그런데 그 사이에 남편 배가 계속 불러오는 거예요. 복부에 염증이 생겼는데 그게 계속 커져서 임신한 배처럼 부풀었어요. 남편은 나 공부하는 데 걱정할까 봐 말도 안 하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배 나왔다고 놀리고...”


“아이고....”


“결국 너무 커져서 남편도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 나한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1차 시험 끝나고 알게 되었는데, 제법 큰 수술이라 이대로 시험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더라구요... 그런데 1차 합격 소식 듣고 나니까 여기서 끝내면 모두에게 괴로움으로 끝나는 일 같아서 더 독하게 마음먹고 2차 준비 시작했어요. 남편은 병가를 내고 시댁에 누워서 병간호받는데, 손주까지 같이 봐주시느라 결국 시부모님까지 몸살이 오셨어요. 그 모든 걸 다 뒤로 하고 집을 나섰어요."


"하...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겠다...."


"네... 2차 시험은 면접이랑 수업 시연이라 독서실에도 못 가고, 카페 한구석에서 중얼거리며 미친 여자처럼 연습했어요...”




그간의 시험 준비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극한의 시련이 주어진다. 그 어려움을 당당히 통과한 이의 삶은 이전과 분명 다르다. 훨씬 단단하고 강력하다. 지인이 이토록 힘겨운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의 신뢰에 대한 보답, 본인 스스로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등 '삶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의지'는 쉽게 꺾인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3년 동안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경험을 담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삶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알 수 있다. 인간에게 삶의 의미 즉,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어떤 시련도 명예롭고 당당하게 견뎌낼 수 있다. 거창한 이유일 필요는 없다. 수용소 안에서 그들은 다시 가족을 만나기 위해, 본업을 이어가기 위해, 혹은 그저 먹고 자는 것을 포함한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여러분의 삶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다시 한번 힘주어 말씀드리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인생이 무기력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독서든 공부든 독하게 시작해봤으면 좋겠다. 이대로 끝나버리는 인생은 없다. 자신의 인생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여정에 삶의 방향을 잡아줄 든든한 인생 책을 만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