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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더 가깝게 할 수 있다면

by 이정연




"우리가 간호회비로 정연씨 책을 산 것 중 한 권을 원장님(주치의) 드렸는데, 주말 동안에 다 읽으시고는 너무 좋은 책이라고 우리 병원식구들 다 읽어봐야 한다며 20권을 주문하셨다지 뭐야."


일주일 전 이야기다. 월요일 아침부터 숨이 멎을 뻔했다.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니들링할 때 어쩌다 한 번씩 출간 준비 중이라던가 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니들링을 하고 투석을 시작까지의 짧은 근황토크 정도였달까.


그런데 인공신장실의 선생님들은 꽤나 나의 책에 관심을 가져셨다. 지지난 금요일에는 간호회비로 구입하셨다는 책에 사인을 해드리고 왔었다. 그리고 텀블벅 구매에 참여해 주신 선생님이 계셔서, 그분의 책에다가도 사인을 해드렸다.


그런데 바로 돌아온 월요일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라니. 믿을 수가 없다. 엇보다 뜻깊은 것은 '읽어보니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투석이 시작되었지만, 가슴이 뛰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회진을 온 원장님을 만났다.

원장님은 책을 받자마자 병원에서 1/3 정도 읽으시고, 퇴근해서 집에 가자마자 나머지를 다 읽으셨다고 하셨다. 원장님은 유명 의대 출신이신데, 그 의대의 연구강사로 재직하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글을 못 써서'라고 하셨다.

"논문을 쓰려고 아침 7시부터 도서관에 앉았어요. 그렇게 하루종일 논문자료, 글과 씨름을 했지. 그런데 그렇게 쓴 것이 다섯 줄이었어. 하루종일 다섯 줄을 썼다고요. 그래서 개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글만 잘 썼으면 계속 학교에 남아서 학생들 가르쳤겠지. 나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을 정말 존경해요!"


논문과 에세이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토록 눈을 빛내며 '글 잘 쓰는 사람'을 찬양하시는 분에게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물론 나는 소논문'도' 잘 쓰긴 했다. 최고점수 외에는 받아본 역사가 없다. 훗. 워낙 자료조사를 잘한 덕이고, 무엇이든 포장이 잘되는 글 실력 덕분이었다. 아, 결국 본인자랑으로 귀결되는군. 래도 명색이 (병팔이) 아이돌이라면 조금쯤은 스스로에게 취해있어야 고, 이런 PR도 할 줄 알아야 한단 말이지.


사람이 한쪽의 시각만으로는 완전해질 수 없음에 대해 말씀하시던 원장님은, 실은 본인도 '투석환자 셋의 보호자'로 살아온 10년 세월이 있음을 내게 처음으로 고백셨다.

병원에서 투석전문의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과가 끝나면, 대학병원으로 응급실로 뛰어다니며 투석환자인 안 어른들의 보호자 역할을 하였다. 보호자의 삶이 추가되면서 병원을 꾸려가는 일에 대한 시각도 많이 변화되었노라 말씀하셨다.

정말 놀랐다. 2021년 10월에 지금의 병원으로 옮기면서, 독보적인 시설에 놀랐었다. 마침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한 참이도 했지만 침대마다 볍고 따스한 고급 이불이 구비되어 있었고, 설치된 티브이 각도가 최고였다. 천장에 봉을 매립해 티브이 모니터를 달아놓았는데 각도가 절묘해서 누운 상태로도 편안하게 티브이 시청이 가능하다. 그 어느 병원도 이런 곳이 없었다.


디테일을 아는 내가 맞장구치며 칭찬을 곁들였더니,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병원자랑을 길게 하신 적이 이전에도 있었다. 투석환자들의 보호자로서 여기저기 다니며 느낀 불편함들을 생각해 반영한 것이 지금 병원의 시설이라는 걸 알고 나니 원장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더욱 커졌다. 원래 환자와 간호사들을 위해서 금전적인 부분을 절대 아끼지 않는 분이다. 하도 세탁을 많이 해서 고급 이불의 충전재가 꺼진 것 같다며, 2년도 안 되어 새 이불로 교체하신 날에도 많이 놀랐다. 내가 아는 다른 병원은 환자들이 덮는 차렵이불을 찢어질 때까지 썼단 말이지.


내 책 칭찬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병원 홍보 같은 자랑으로 귀결된 것은 책에도 원장님 이야기가 꽤나 쓰여있기 때문일 게다. 원장님 본인이 등장하길래, 욕이 나올까 봐 긴장하며 읽으셨다 하여서 웃음이 터졌다.

"우리 병원 식구들도 출연하던데? 4명. 흥숙, 경주, 치프, 김원장."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으셨는지, 놀라고 말았다.


스무 권의 책에 모두 사인을 해줘야 한다고 하셔서 책이 배달되기를 기다리며, 매일 사인용 펜을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대망의 첫 사인회를 가졌다.



간호사 스테이션 안쪽으로 들어가니, 진짜 사인회처럼 책이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작가님, 요구르트 한 병 하실래요?" 하셔서 시원한 요구르트도 받아 마셨다.

직원 명단이 저 옆에 있다. 총 20권에 사인을 하면서, 요청에 의해 이런저런 메시지도 추가했다.

첫 권에 사인을 하면서는 가슴이 너무 떨려서 손도 떨렸다. 혹시 모를 일이니, 혼자 사인 연습을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사인을 사인펜으로 하는 중이다. 책 내지에 사인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다. 계속 사인하는 거 힘들겠다고, 팔 아프겠다고 선생님들이 오가며 걱정을 해주셨다. 고작 20권인데.

병원에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 계신데, 그분에게 한 사인을 찍어보았다.


책을 낸 덕분에 원장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우리 막내 선생님들조차도 응급실에서 5년씩 근무한 베테랑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응급실 5년 근무하고 인공신장실 막내로 들어온 분이 바로 사진 속 주인공일 게다. 비교적 가장 최근에 입사하신 분이거든.

사실 수 간호사 선생님부터 제일 윗 연차 5분의 이 병원 근무연도를 모두 합치면 100년이란다. 병원의 역사만도 30년, 인공신장실 역사도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엄청난 곳에 다니고 있다.


어쨌든 뷰가 좋은 자리에서 첫 사인회를 했다. 드라마를 보면 작가님 드시라고 음료가 준비되어 있던데, 내게도 아주 시원한 요구르트가 주어졌으니 소박하지만 제대로 된 사인회를 한 셈이다.


책을 사주시고 또 굳이 사인까지 받겠다고 해주시니 내가 감사한데, 신장실을 나서는 내내 선생님들께 "감사해요-"하는 인사를 들었다. 그리고 모두 입을 모아 "안녕히 가세요" 외치시는데 조직의 형님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다음 목표는 교보에서 팬 사인회 하기!

그러려면 계속 열심히 글을 쓰고, 또 새로운 책 기획을 해야 할 때다.

적어도 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은 지키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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