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쓸 수 있을까.

by 이정연



끔찍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이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바닥을 보았다. 그런 일들이 나를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더는 에세이를 쓰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글은 마음으로 쓴다. 엉망이 되어 버린 마음으로는 온전한 글을 쓸 수 없었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나의 인생을 팔 수밖에 없다. 나는 최대한 조심하며, 나의 이야기를 했다. 기꺼이 나를 팔았고, 나의 병을 팔아 병팔이 아이돌로 살아가는 인생을 택했다. 그렇게 나의 인생 팔이를 하며 에세이를 써낸 결과, 너무도 큰 상처들을 받았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작은 문장 하나에 집착한 누군가는 나를 고소하니 마니 막말을 해댔고, 정말 자존심 상하게도 그런 말에 꺾였다. 심지어 그는 나와 유전자를 공유한 사람이었다. 정말 다시는 에세이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브런치를 놓고 싶지는 않아서 억지로 썼던 글은 결국 힘을 잃었다.


브런치에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2020년부터 나의 연재처가 되어 준 이곳이, 나의 첫 책의 모든 뿌리인 이곳이 내게 가장 불편한 곳이 되었다. 절대로 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내게 바닥을 보인 사람들이 이 공간을 염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 있었기에 차라리 쓰지 않는 쪽을 택했다. 쓰지 않는 일은, 정말로 마음이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염탐하는 일 자체를 차단할 수 있었기에 행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5월의 어느 날 친한 친구 소소와 만난 날, 뜨끔하고 말았다.

"시간 날 때, 언니 글 다 읽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새로운 글은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언니 요즘 글 안 쓰나 봐요?"

소소는 나와 같은 도시에 산다. 어쩌면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친구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친구 중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또 멋진 사람인 소소. 그런 소소가 내 브런치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늘 바쁜 회사생활 외에도 개인 공부를 하느라 쉴 틈 없는, 요즘 말로 '갓생'을 사는 소소가 시간을 쪼개어 내 글을 찾아 읽다니! 믿을 수 없이 고맙고 기뻤다.

내 생에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나의 적들 때문에 글을 놓아버린 사이, 누군가는 내 글을 찾아 읽고 새로운 글을 기다리고 있었다니. 게다가 내 브런치의 가장 최근의 글들은 내 책과는 또 문체가 달라서 더욱 재미있고 새로웠다는 소소의 감상이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쓰려고 했다. 그러나 몇 번이나 그 마음을 물렸다.

나를 짓밟은 그들을 내 마음에서 비워내고, 나는 다시 에세이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브런치에서 에세이를 쓰기 이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에세이를 써 왔다. 여중 1학년 생 시절, 일본 수필가인 오오하시 시즈코 선생님의 <멋진 당신에게>를 읽은 후로 선생님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우아하면서도 다정하고 소박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그즈음부터 선생님을 따라 혼자 몰래 글을 써 보곤 했다. 여고시절에는 혼자만의 에세이집을 수기로 써 내려가며, 진진을 구독자로 삼기도 했다. 그토록 오래 꾸어온 꿈이었다. 나는 내가 정말 단단하고 씩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사람 때문에 나는 그렇게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들의 공격이 얼마나 저열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엄마가 힘을 잃은 종이인형 같았던 시기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흡사 고아가 된 것 같은 그런 비애를 느끼고 있을 때 그들은 나를 짓밟고 공격했다. 그들이 나와 내 책을 공격한 일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나를 졸렬하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들을 증오하는 마음을 양분 삼아, 다시 에세이를 쓸 테니까.

언젠가는 내가 팔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팔 수 있는 이야기 꾼이 되어 볼 테니까.


이 화면 앞에 앉기까지, 이 마음으로 앉기까지 반년이 넘게 걸렸다. 오다가 부딪히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다시 쓸 수 있을까, 다시 에세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를 자문한다면, 20년을 사랑해 왔기에 나는 다시 끈질기게 그 사랑을 이어가겠다고 말하겠다. 나는 한 번 사랑한 마음이 변했던 일이 없었다. 사랑을 멈추는 일은 내 사전에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