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를 읽은 독자님들은 내게 꽤나 많은 감상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그 메시지 중에는 "지금도 청국장을 안 드시나요, 작가님?"하고 장난스럽게 물으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멋쩍은 듯, 여전히 청국장은 먹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말이 앞서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기에 내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상세히 쓸 수 없던 에세이스트의 운명. 에세이가 아닌 글들을 쓰느라 골몰하다 보니 에세이는 당연히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10월 추석 연휴에는 에세이를 한 편 써서 공모전에 제출하고도 싶었는데, 결국 쓰지 못했다.
나는 에너지가 한정돼 있는 사람. A를 하면 B를 하지 못한다. 다른 일을 하느라 에세이를 쓸 수 없었고, 요즘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SNS도 끊었다. 아주 가끔씩 짤막한 사진에세이만 게재하고 있다. 그나마 SNS를 해야 글을 쓰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으니 거의 3주간 한자도 쓰지 못하고 지내는 중이었다.
3월부터 며칠 전까지 4번의 이식센터 전화를 받았다. 이식센터 전화를 수십 번 받았지만, 아직도 뇌사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울렁거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올해 4번의 전화 중 2번은 1순위였다. 정남이와 혈관 시술을 받으러도 벌써 몇 차례 다녀왔다. 5월에 새로 도입된 기술 덕분에 시술 주기가 짧아져도 투석 생명 연장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5월에는 한국사 능력검정시험에 도전해, 1급 자격을 얻었다. 할 수 있는 많은 도전들을 했지만, 어느 순간 방전이 되었다. 올해 초에 있었던 힘든 일이 여전히 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많은 꿈을 꾸었고, 요사이에는 악몽도 정말 많이 꿨다. 그래도 살기 위해 몇 달째 꾸준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SNS를 끊다시피 한 것은, 일상에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정해질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늘 불특정 다수에게 친절하기 위해 노력했던 에너지를 모두 일상에서 가장 밀접한 가족에게 몰아 쓰기로 결심을 하니 웃을 일이 많아졌다. 특히 혼자 방에 박혀 있지 않고, 되도록이면 현재 휴직 중인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드라마를 챙겨보기도 했다. 선생님께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드라마를 보는 일, 영화를 보는 일 모두가 공부라고 하셨는데 나에게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지난주에는 채널을 돌리다가, 엄마와 인간극장을 보게 되었다. 청국장을 띄우는 서른 살 젊은이의 이야기였는데, 팔순이 가까운 할머니가 하시던 일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완벽주의에 가까운 활력 넘치는 할머니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손자. 그들이 가마솥에 깨끗한 콩을 안치고 참나무 장작만을 이용해 가마솥을 뜨겁게 달구고 뜨끈한 방에서 오래된 이불을 덮어 장을 띄우는 그 모든 과정들이 좋았다. 정말 깨끗하다, 왠지 저 청국장으로 만든 청국장찌개는 냄새도 안 나고 정말 맛있을 것 같다! 우연히 마주친 인간극장 다섯 편을 모두 보고 나서,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2017년에 방영되었던 인간극장이었는데 여전히 할머니와 손자는 함께 청국장을 띄우고 계신 것 같았다. 스마트 스토어에서 그들의 이백 그람짜리 청국장 다섯 덩이를 발견해서 샀다. 엄마가 놀란 눈을 했다.
"아이고, 꼬랑장을 만다꼬 먹노?"
정남이와 엄마는 청국장찌개를 좋아한다. 그리고 청국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하면, 아빠와 내가 어김없이 하던 말. 아이고, 꼬랑장 냄시. 뒤이어 우리는 코를 쥐어잡았다.(청국장을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나는 아빠의 외모도, 입맛도, 성질머리도 똑 닮았다. 하필이면 큰 키만 닮지 못했다. 생선초밥 먹는 법도, 육회 먹는 법도 아빠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꼬랑장을 비난하는 법까지도.
정남이와 엄마가 청국장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냄새와는 달리 맛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기대를 품고 딱 한 숟갈을 떠 본 적이 있다. "떼잉" 소리를 치며 대번에 숟갈을 놓았다. 2012년 1월에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카레덮밥인 줄 알고 먹었던 것이 사실은 청국장임을 알고서 바로 숟가락을 놓고 커튼을 쳐 두고 울었던 사람이니 말 다 했지. '청국장인 줄 모르고 반이나 먹다니! 아오 자존심 상해. 엉엉엉.' 내 책을 읽으신 분들께는 청국장 헤이터 정연의 이미지가 꽤나 강렬했을 것이다.
아빠와 나는 맛없는 것은 먹지 않는다. 굳이 인생의 끼니를 맛없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에 낭비하지 않는 우리는 그렇게 꼬랑장이라고 청국장을 비난하며 멀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내가 청국장을 샀다? 청국장이 배송되기까지 엄마와 나는 어쩌면 정연이가 청국장을 먹지 않을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녁을 굶어서 속이 허하던 지난밤, 엄마는 청국장찌개를 미리 끓여놓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나는 늘 새벽 6시면 집을 나선다. 정남이는 6시 즈음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다. 그보더 훨씬 일찍 일어나서 찌개를 끓일 자신이 없었던 엄마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청국장찌개를 완성했다. 냄새가... 안 난다! 나는 엄마를 생각해 주는 척하며, "내가 간을 봐주어야겠네!"라고 했다. 그리고 자정에 갓 지은 밥에 청국장찌개를 먹었다. 우와! 이거 뭐지! 너무 맛있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 나의 표현에 엄마가 베란다 문을 열어둬서 네가 많이 추운가보다 했다. 한 숟갈 정도 맛 보려던 계획이 한 공기로 확장됐다.
내가 너무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생글생글 웃었다. "정연이 표정이 진짜 맛있다는 표정이야!"
나는 정말이지 아빠와 똑같아서 맛있는 것이 아니면 먹지를 않고, 맛있으면 맛있다는 표현을 솔직하게 한다. 맛없는데 맛있다는 거짓말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다. 입이 삐뚤어져도 바른말을 하는 습성 탓이다. 그 역시 아빠를 닮았다.
이런 맛이라면 꼬랑장이라고 비난하는 아빠도 마음을 돌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청국장도 있는데, 이 청국장을 아빠는 먹어보지 못하고 가셨네. 다음에 아빠 만나러 갈 때는 이 청국장을 끓여서 가면 아빠가 화 내려나, 혼자 웃었다.
자정에 먹은 청국장이 너무 맛있어서, "오늘을 세계 청국장의 날로 지정할 거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 내리 두끼를 청국장으로 채웠다.
아, 인생 재미있다. 3x 년만에 처음으로 청국장을 먹다니. 그것도 맛있다고 극찬하며 먹다니. 인생은 정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2025년 10월 22일, 왠지 콩알처럼 동글동글하게 느껴지는 숫자의 조합. 오늘은 기념비적인 세계 청국장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