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

이고 싶다

by 이정연


한 때 나는 내가 하이에나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짐승이 다치거나 죽어 자신의 먹이가 되기를 기다리는 하이에나처럼. 사실 뇌사자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어느 정도 품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짐승의 썩은 고기를 기다리는 하이에나보다는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한 마리의 표범이 되고 싶다'던 가왕 조용필님의 노래처럼, 나도 지금 그런 인생을 선택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콩팥 두 쪽은 한 방에 같이 사망했다. 그때 나이 25세 0개월. 그러니 병원에서는 투석보다는 이식이 더 좋은 치료라고 말했다. 내가 뭔가 의사표현을 하기도 전에 이식 코디네이터 선생님과 약속이 잡혔다. "이식에는 생체이식이 있고, 사후 기증을 통한 이식이 있고. 너에게 콩팥을 줄 수 있는 혈액형은 이러이러하며..."


그때의 나는 이식에 대한 열망이 있었으나, 사실상 포기 상태였다. 갑자기 비싼 이식 비용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고 그나마 생체이식이 제일 빠른 방법인데 그걸 택하면 가족 중 누군가가 희생해야 했으므로 이식이란 건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무엇보다 가난한데 아프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속상했다. 수요일마다 나오던 병원비 중간 정산 청구서가 난 제일 싫었다.


늘 내 병실을 지키고 있는, 키 크고 건강해 보이는 동생을 볼 때마다 담당 교수님은 "동생이 이렇게 건강한데 무슨 걱정이야! 살만 좀 빼서 누나한테 콩팥 하나 주면 되겠네~"

담당 교수니까 나는 최대한 표정을 구기지 않으려 애썼지만, 내게는 귀하디 귀한 동생를 장기 대체품쯤으로 여기는 그 말이 너무 기분 나빴다. 나는 동생에게 콩팥을 맡겨둔 일이 없다. (그 때는 덜 아파봐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자신이 나에게 콩팥을 주기만 하면, 당장 건강을 회복하는 기적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펑펑 울면서 살을 빼겠노라 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누나를 살리겠다고 저 어린 나이에 콩팥 한쪽을 잃었다가 앞으로의 삶에 지장이 생기면 어떡하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혹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는데, '누나한테 콩팥까지 떼 준 너 같은 남자는 싫어!' 이런다면? 본인의 가정을 꾸리기 전의 가족에게 너무 많은 걸 희생하는 남자와는 가정을 꾸리도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나에게 콩팥 하나를 준다고 남은 다른 한쪽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병원에서 누누이 말했지만, 내가 빼앗아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면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동생의 미래를 담보로 해서까지 건강해지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동생의 혈액형은 O형, 나의 혈액형은 A형.

일단 혈액 교차반응 검사나 조직검사 등을 거쳐야 하겠지만, 혹 조직적합성 판정을 받더라도 문제는 끝나는 게 아니었다. 동생이 나에게 콩팥을 떼 주기 위해서 동생이 받아야 할 검사만 해도 수십 가지였다. 그 비용을 다 하면 그때 당시 400만 원 정도, 거기에 우리 둘의 혈액형이 달라서 내가 이식 전 일주일 동안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그 주사 비용만 또 500만 원이었다. 쇄골 아래쪽에 주사를 꽂고 다른 혈액형의 장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혈액 내에 있는 혈장을 교환하는 10번의 혈장교환술을 완료해야만 타 혈액형간의 이식이 가능했다.


그때 입원 해 있었던 장기이식병동에는 동생분에게서 콩팥을 받아 이식 수술을 하신 진주 아주머니가 계셨고, 그분이 나에게 꽤 많은 말씀을 해주셨었더랬다. 혈장교환술을 하기 위해 꽂는 주사가 얼마나 비싸고 아픈지도 그분을 통해 알았다. 풍채도 좋고 씩씩했던 아주머니가 혈장교환술만 하고 오면 기운이 쭈욱 빠져 실려 들어오곤 했 모습은 늘 어린 내게 겁나는 광경이었다.


절대로 동생 몸에는 칼을 댈 수 없다, 는 게 나의 끊임없는 주장이었다. 이식을 강력히 권하는 병원의 입장 대해 나는 점점 더 두려움을 느꼈다. 투석을 하면서 버텨내기에도 너무 겁이 났다. 그리고 투석을 오래 할수록 몸이 망가지기 때문에 젊을수록 투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이식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수많은 검색 지식들이 알려주었다. 만약 집안 형편이 넉넉했다면, 어쩌면 동생이 울고불고 누나에게 자신의 콩팥을 떼어주겠다고 했을 때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선택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식을 받고 건강해진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는지.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게 양심을 버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성공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한 때는 기약 없는 뇌사자 이식 대기자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내 한 몸 건강해지거나 성공하기 위해 폐 끼치지 않았고, 덕분에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고 오늘까지 떳떳하게 살아있다. 생활의 불편함 쯤은 양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만 있다면, 앞으로 무슨 좋은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절대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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