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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Oct 09. 2020

사랑니만 발치하는 신기한 병원 이야기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마음을 쓰고 있던 숙원사업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매복된 사랑니를 발치하는 것. 매복 사랑니가 발견된 건 올해 초쯤으로 기억한다. 다른 치료를 받기 위해 CT를 찍었다가 누워있는 사랑니를 빼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늘상 다니던 치과의 의사쌤은 여기서 뽑아도 되지만, 후유병 등이 있을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대학병원을 갈 것을 권했다. "6월쯤엔 아마 꼭 뽑으셔야 할 거예요" 의사쌤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늘 짐처럼 남아있었다. 아, 사랑니 빼러 가야 하는데...!


사실 그동안 사랑니가 몇 번 아팠다. 아픈 것보다도 숨어있는 이를 잇몸을 째서 꺼내야 한다는 두려움이 더 커서 모른 척했다. 영원히 모른 척하고 싶었다. 의사쌤이 꼭 빼야 한다던 6월도 지금은 아프지 않으니까, 하면서 모른 척 넘겨 버렸다. 그러다 지난 9월, 이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몇 번이 반복되고 보니 아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마침 회사 동료 여러 명이 사랑니를 뽑아보았다는 전설의 그 병원이 생각났다. 곧바로 S에게 그곳이 어딘지 물었다. 사랑니만 발치하는 병원이라니. 음식점도 이것저것 판매하는 곳보다 설렁탕이면 설렁탕, 게장이면 게장 뭐 하나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신뢰가 가기 마련인데 사랑니만 발치하는 병원이라니, 궁금해졌다. 그렇게 잘 뽑나?


예약부터 난관이었다. 사랑니를 뽑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예약 전화를 하니 한 달 뒤부터 예약이 가능하단다. 내일 당장 사랑니를 뽑으러 가야 하는 건 아닐까 긴장 상태였었는데, 한 달이라는 유예 기간이 있다니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다가온 것이다. 10월 7일, '사랑이 아프니'라는 치과로 사랑니를 뽑으러 가는 날이.


병원 중에 안 무서운 병원이 있냐마는, 나는 그중에서도 치과가 제일 무섭다. '사랑이 아프니' 치과에 들어서자마자, 윙-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CT를 찍는 와중에도 CT 기계음이 무서운 소리로 울려댔다. 마치, 치과는 병원으로 들어오는 환자들을 겁주기 위해 작정한 것만 같다. 이 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한없이 쪼그라들어서 아예 사라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 치료 소리들이 조금만 작아지거나, 아예 들리지 않는다면 무서움은 조금 덜어질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심장이 자꾸만 벌렁거리고,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얼마나 아플까, 치위생사분들한테 무섭다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예시님, 들어오세요.


사랑니를 뽑는 게 이렇게 위험하고 어려운 거다, 동의하겠느냐 라는 의사쌤의 무서운 말을 시작으로 발치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왼쪽 아래 매복되어 있던 사랑니만 뽑으러 갔던 것이었는데, 윗니도 너무 길게 자라나고 있어 함께 뽑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에 생각지 못하게 두 개를 동시에 뽑게 됐다. 긴장감 최고조..!


사랑니 두 개를 뽑아야 해서 마취를 5방이나 놓았다. 이미 2개의 사랑니와 이별해본 경험이 있음에도 마취는 어색했다. 입술이 오른쪽 왼쪽으로 정확하게 구분되어 서로 따로 놀았다. 아랫입술이 부어오르고 혀까지 찌릿찌릿한 기분. 시간이 조금 지나자니, 왼쪽 마취를 놓은 부분으로 혀를 아무리 움직여도 이쯤이면 이가 닿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혀를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사랑니를 발치하거나, 실밥을 뽑으러 오신 분들이 여러 차례 지나가고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내 사랑니도 세상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니 두 개를 뽑는 건 5분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두려움에 일 년 내내 몸을 떨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편안하게 사랑니와 이별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매복 사랑니를 단 시간에, 편안하게 뽑은 감동도 있었지만, 내 감동은 다른 것에 있었다. 사랑니 발치 공장의 섬세함 때문이었다...!


1. 사랑니를 뽑기 전에 바셀린을 발라주신다.

치과에서 바셀린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치료가 시작되기 전, 치위생사 분이 다가와 "바셀린 발라 드릴게요" 하며 면봉에 묻힌 바셀린을 입술에 발라주었다. 이제 제법 쌀쌀한 날씨에 입술이 자주 마르던 참이었는데, 치료하다가 입술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섬세함이었다.


2. 치료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주신다.

치료를 할 때 매일 생각하는 건, 도대체 언제 끝날까?이다. 그런데 이번에 치료받으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가장 고마던 부분이 지금 치료가 몇 퍼센트 진행되고 있는지를 생중계해주시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생중계 코멘트가 몇 번 없이 금방 끝났다는 거.

"마취 잘 됐는지 확인해 볼게요. 누르면 찌르는 느낌이 나면 알려주세요"

"아랫니 먼저 치료 시작합니다"
"아랫니 절반은 빼냈습니다"

"아랫니 모두 잘 뽑았습니다. 윗니 뺄게요"

"윗니도 모두 뿌리까지 잘 뽑았습니다."





치료가 끝나자마자 의사 선생님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선생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며,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치료실을 빠져나왔다. 이곳은 괜히 사랑니 전문 발치 병원이 아니구나... 싶었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는 덜해서 다행이다. 빨리 예쁘게 아물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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