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권력들
한중섭 씨의 책 <비트코인 제국주의>는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면서 블록체인에 관한 어떤 이상에 사로잡힌(possessed)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예컨대 블록체인은 탈중앙성을 가지기 때문에 권력을 해체하고, 사회를 투명하게 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상주의자들을 저자는 염두에 두고 쓴 것 같다. 그러나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탈중앙화는 냉정하게 말해 유토피아다. 결코 실현될 수 없다. 바람직해 보일 수는 있으나 실현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개념이란 뜻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에서 권력이란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누군가를 억누르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공산주의가 제 아무리 만인의 평등을 꿈꾼 이념이었다고 한들, 민주주의가 권력 감시를 기치로 국민 주권을 지향한 이념이었다고 한들 모두 실패하거나 변질됐다. 나는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드려는 시도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려는 게 아니다. 탈중앙화가 가능하다며 사람들을 호도하는 행위에도 권력이 숨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업들은 저마다 암호화폐를 발행해 탈중앙화된 사회를 만들고, 부를 민주화하는 등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그럴듯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개중에는 블록체인이 검열을 저항하는 기술 내지는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는 4차산업기술의 첨병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블록체인의 탈중앙성 철학은 훼손됐고, 한때의 이상주의자들은 주판알을 굴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인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제 아무리 중립적인 기술이라도 사람들은 중립적으로 쓰지 않는다. 이 모든 예측은 인간의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
특히 한중섭 씨가 프라이버시에 관해 서술해둔 대목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프라이버시. 참 중요한 개념이다.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라고 다들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프라이버시 보호에 그다지 치밀하지 않다. 당장 SNS만 봐도 사람들은 각종 개인정보나 '좋아요'나 게시물을 페이스북 등에 기록(이라 쓰고 반납이라 읽는다)함으로써 자신들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페이스북에 그대로 제공한다. 프라이버시를 희생함으로써 얻는 서비스의 편리함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디지털 금융 선진국으로 도약 중인 중국의 경우 시민들이 프라이버시를 내주고 수준 높은 금융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런 수순이라면 향후 국가에 프라이버시를 맡기고 사회 신용 1등급을 부여 받아 인스타그램에 게시하는 순종적인 신민이 등장할 수도 있음을 저자는 예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