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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lobster Dec 27. 2023

영화 <괴물>을 보았어

미숙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상대가 정치인 화법을 흉내 내는 태도를 보인다면 화가 날 것이다. 머리 쓰는 바보처럼 사람을 화나게 하는 건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바보라면 경우는 다르다. 그때는 내가 바보가 된다.  

초반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인간일까 돼지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후 그 답을 찾는 과정처럼 보였던 영화는 같은 사건을 보는 시선만 바꿔  '마녀사냥, 입장 바꿔 생각해 봐'로 주제를 바꾼다. 이건 좀 익숙하다. 하지만 익숙하다 해서 적응이 쉬운 건 아니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사회적 동물이어서 삶의 터전인 사회에서 폭력적으로 내몰리는 이런 종류의 상황은 늘 불편하다. 대신 '인간의 지능과 마음이라면 이럴 수가 없는데 왜 이런 짓을 하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영화는 이 질문에 답하는 대신 또 한 번 같은 사건을 두고 새로운 시선을 추가해 (또 한 번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라 부르지 않아!"라는 주제를 꺼낸다.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언뜻 당연해 보이는 이 메시지는 영화 속 몇몇 등장인물들에게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인생의 궁지에 몰린 영혼이 인생을 무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래도 행복할 수 있어!") 

결론적으로 이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앞선 두 가지 시선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앞선 두 개의 에피소드 각 말미에도 등장했지만 알아채지 못했던 (언뜻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은) 정체불명의 소리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조건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사방에 있는 행복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관객들 모두 영화 속에서 듣고도 모른 채 지나쳐 온 것이다.  


영화는 올해 봄 타개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곡 한곡 전체를 들려주며 마무리된다. 이 영화의 OST이지만 이미 음악 자체로 널리 알려진 곡이어서인지, 언젠가 내 안에 괴물 때문에 무섭고 외로울 때 그때도 내 곁에 있었지만, 그랬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인생의 위로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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