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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lobster Jul 01. 2024

당근, 감자, 고구마, 무, 배추, 당신

새가 날아갈 때 새가 가리는 하늘은 꼭 새 모양이다. 당신이 떠났을 때 당신이 가린 사랑도 꼭 당신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지하철 남영역과 서울역 사이 차내 실내등이 잠깐 꺼졌다 켜지는 구간. 그 구간을 지날 때면 전력 공급 방식 변경 때문이라는 안내 방송이 늘 나온다. 말하자면 내 삶의 한때를 밝혀주던 형광등이 꺼졌다.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일지는 알지 못한다. 끝난 연애에 안내 방송 같은 건 없다. 새 전력 공급원을 찾아야 찾아야 할 시간.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히기 위해 달이 몇 개쯤 필요할까? 내가 아주 잘 아는 한 사람은 연인과 헤어지고 다음 연애를 시작하려는데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동시에 만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흙이 묻은 야채를 흐르는 물에 씻다 보면 무엇이든 반드시 씻어내는 시간의 힘이란, 다름 아닌 흐르는 데 있음을 알게 된다. 당근, 감자, 고구마, 무, 배추, 당신. 말하자면 이별 후 시간으로 씻어낼 것은 흙이지 당신이 아니다. 기침이 오래가는 감기 조심.


일본인 여행가 후지와라 신야는 아무리 힘든 이별도 6개월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이를테면 실연은 특별한 의학적 처치 없이도 회복 기간이 정해진 통증이라 실연의 고통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없다.  말하자면 '6개월 = 태양(중력)이 사라졌을 때, 마치 태양이 계속 있는 것처럼 지구가 종래와 같은 공전궤도를 따라 도는 최대 기간.' 태양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지구가 같은 공전 궤도를 도는가의 문제. 아직 읽지 않은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Romain Gary)의 소설 제목「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는 여러모로 시링이야기 같다. 이별이라는 경계를 만나기 전 내 사랑말이다.


사랑과 고구마의 공통점, 식을수록 팍팍하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지난밤 내 꿈속이었으므로 나는 다시 뜨거워졌지만, 구름버스에 오르자마자 이내 그 바다에 닿았지만, 그 바닷가에서도 너는 혼자가 아니어서 그래서 나는 혼자였고, 도대체 이런 꿈을 왜 꾸는 건지 알 수 없는 나는 아침상에 다시 오른 엊저녁 고구마처럼 미적지근하다. 사랑과 고구마의 공통점 식을수록 팍팍하다. 꿈이나 전자레인지로 데운 것 모두 다시 식을 수 있고,

또 한 번 식어버린 아침은 또 얼마나 팍팍한 맛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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