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 김민기 노래 "친구" 중에서

by Yeslobster

대학 복학생 시절 공강 때면 목욕탕에 가곤 했다. 그곳을 유독 좋아하는 같은 과 두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에도 아침 첫 수업이 휴강이 되자 우리 셋은 곧장 학교 인근 주택가에 있는 목욕탕을 찾았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간헐적으로 욕조에 한 방울씩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수증기로 기화되어 천정까지 날아올랐던 물이 다시 한 방울 액체뭉쳐져 지구의 중력을 엔진 삼아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소리였다.

욕조 가득한 물은 투명했지만, 당시 우리의 미래는 지극히 불투명했고 우리 조국의 미래는 그보다 더 불투명했다. 국제법 시간에 이름으로만 접한 한 국제기구가 대한민국의 모든 뉴스를 도배하던 시절이었다. 우리 셋은 전날 학생회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환율이 1달러당 2,500원까지 올랐다는 뉴스속보를 함께 보았다. 내가 달러로 월급을 주는 직장을 찾아보자고 운을 띄우자, 한 친구가 160킬로미터로 야구공을 던질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취업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속력만 빠르고 제구력은 엉망인 대답이었지만 우리는 덕분에 즐거웠다.

그 한 친구가 그날은 누가 운을 띄우지도 않았는데 "난 천국이 있다면 목욕탕일 것 같아! "라고 말을 했다. 따뜻하게 온몸을 감싸는 탕 안에서 모든 근심, 걱정이 녹아버렸는지 나와 다른 친구도 "아무렴, 아무렴 천국은 목욕탕이지!"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우리 셋은 모두 그 후 어떻게,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 원화로 급여를 받는 직장을 구했는데, 직장도 다르고 무엇보다 직장생활에는 공강시간이 없어 목욕탕을 함께 가는 일은 다신 없었다. 대신 각자의 결혼식장과 같은 곳에서 만나 우리의 현실에서 멀어진 천국을 함께 꿈꾸기는 했다. "어떻게든 각자의 지옥을 정년까지 버텨내 다시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자!", "목욕탕 쉬는 날에는 동네 뒷산에 올라가 막걸리 딱 한 병씩만 먹자!" 이런 들이었다.


그냥 좀 쉬고 싶어 며칠 휴가를 냈는데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왔다. 지난 8개월 정도 지속한 운동이 제법 몸에 붙어서인지, 아님 항상 파김치가 되어 저녁에 하던 운동을 모닝커피 직후에 해서인지 운동하는 시간이 내내 즐거웠다. 헬스장이라는 곳이 이어폰으로 귀를 닫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두 시간 남짓 열심히 몸을 움직인 덕에 마치 따뜻한 열탕 속에 있다 나온 것처럼 이마에 송골송골 솟은 땀방울이 흐르먼서 내 뇌 속 장기기억장치에 담아둔 오래전 천국의 추억을 불러왔다. 지금은 각자도생의 강을 건너느라 연락조차 한참이나 뜸해진 그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새로운 천국을 찾았노라!" 그간의 안부부터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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