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배 고픈 걸 정말 싫어한다. 어쩌다 일 때문에 식사를 거르거나 늦어지면 화가 난다. 청년 시절엔 배가 고프면 잠을 못 잤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먹는 양이 현저하게 줄고 저녁 식사 후에는 아무리 배 고파도 야식은 절대로 안 먹는 습관이 생겼지만 어쨌든 식사시간에 맞춰 밥을 못 먹어 배 고픈 건 못 참는다. 아무래도 선천성 위장 허탈증(?)인 것 같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외출했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왔다. 평소 식사 시간보다 늦은 시각이라 배가 막 고프려고 하는데 집에 도착한 지 10분도 안 돼 아내가 저녁 식사를 차려내 놓는다. 물론 밥과 찌개, 밑반찬 정도였지만 먹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같이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음식 준비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혼 38년 동안 아내는 한 번도 내 배를 곯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을 때는 정성스레 이것저것 준비해서 풍성하고 맛난 식단을 차려내고, 바쁘다 싶을 때는 햇반과 기본찬으로 잽싸게 차려내 놓는다. 남편이란 인간이 배 고픈 걸 절대로 못 참는 걸 알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집밥 생각이 간절한 법이다. 그때도 여행에서 같이 돌아온 아내는 30분 안에 밥을 차려 내곤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한 번은 궁금해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아내 왈 "나는 여행 가기 전에 다녀와서 뭘 먹을 건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 놓고 가요. 돌아와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이 들어 그날 식탁에서 아내에게 감사 표현을 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나와 38년 같이 사는 동안 한 번도 내 배를 곯린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참 고마워. 여태 그런 표현을 못 했네" 마침 그 날 집에 다니러 온 딸내미가 거든다. "맞아, 엄마는 음식에 관한 한 세계 최고지. 평소 식단이며, 계절 음식이며, 맛이며... 나무랄 데가 없지" 아내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기분 좋은 표정이 역력하다.
총각시절 나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있었다. 한 번은 그 집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부인이 얼마나 음식을 못 하는지 친구인 남편이 아내에게 화를 내는 걸 보고 내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아내의 음식 솜씨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그 부부의 저녁 식탁이 궁금하다.
가정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잘하는 게 있고 아내가 잘하는 게 있다. 요리에 관한 한 나는 젬병이다. 전기밥솥 이용해 밥 짓고 라면 끓이는 정도다. 1년째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아내로부터 배우는데 여전히 혼자서는 잘 못 한다. 내가 잘하는 걸 아내는 잘 못 하고, 또 아내가 잘하는 걸 나는 잘 못 한다. 그래서 부부로 같이 사는 거다. 그게 '돕는 배필'이다. 부부란 배우자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서 결혼하는 거다. 그래서 배우자를 영어로 'better half'라고 부른다.
또 마누라 자랑했네. 에이, 이런 팔불출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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