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마누라
'내 아내를 소개합니다. 부부싸움할 일은 없네요'
며칠 전 모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궁금해서 내용을 읽어보니 일본에 사는 35세 독신남이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아이돌 여성과 오는 11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과 홀로그램을 결합힌 이 캐릭터는 일본 벤처기업인 게이트박스의 제품이다.
그가 예비 신부인 AI 스피커에 말을 걸면 공주풍 의상을 입은 여자 캐릭터가 키 25cm의 2D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손짓을 하며 대답한다. 그가 샴페인 잔을 가까이 대면 그녀는 가상의 음료 잔을 손에 들고 "건배"라고 외친다. 그리고 "나 퇴근하고 있어"라고 메신저로 알려주면 미리 집 조명을 밝히고 목욕물도 받아준다.
이 기사를 보면 혼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런 제품이 많이 팔린다는 내용이다. 주요 제품들은 AI 스피커, AI 로봇, 반려 로봇(고양이) 등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한 영화가 떠올랐다. 2013년 스파이크 존즈 감독, 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요한슨(목소리 출연) 주연의 영화 'her'가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다음 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남의 편지를 대신 써 주는 대필 작가로 아내와 별거 후에 무료하고 공허한 일상을 보내던 중 PC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만다는 실제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느낄 줄도 아는 AI 다. 그는 실제 연인처럼 사만다를 대하고 사만다 역시 누구보다 테오도르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고 고민하고 사랑을 나눈다. 심지어 가상섹스 파트너도 돼준다. 테오도르는 그렇게 그녀에게 헌신했건만 영화의 결말에서 사만다는 테오도르 외에도 수천 명과 대화를 나누고 수백 명에게 같은 작업(?)을 한 걸 알고 테오도르가 충격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으로 아주 흥미롭게 봤던 영화다. 그 영화는 2025년 LA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2018년 현재 영화 같은 내용이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에 대한 외로움을 상품으로 하는 것이다. 일종의 외로움 산업이다. 어떤 이유로든 함께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런 대체재를 찾는 것이다. 배우자, 가족 등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것들은 필요 없지 않을까? 미리 조명을 밝히고 목욕물을 받아줄 인공지능 기기는 필요하겠지만 이런 기기가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사랑을 나눌 배우자를 대체할 수 있을까. 자녀가 주는 기쁨과 희열을 대신할 수 있을까. 위에 언급한 영화 'her'의 교훈도 인공지능을 인간처럼 사랑하려고 했던 테오도르가 그 한계성을 깨닫고 사만다와 헤어진 다음 전처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보내며 인간적인 사랑의 위대성을 발견한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100세의 김형석 교수가 일간지에 연재하는 '100세 일기'에 부부싸움을 하는 80대 노부부의 사례를 들면서 오래전에 사별하신 사모님께서 꿈에 부부싸움이라도 하러 왔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에 가슴 뭉클했던 생각이 난다. 세인의 존경을 받으며 100세에도 건강하게 사시는 이 시대의 지성이자 롤 모델이지만 정작 본인은 반려자가 없는 오랜 세월 동안의 외로움을 수 차례 밝히신 바 있다. 사람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한다. "어떤 처도 빈 방보다 낫다"거나 "효부가 악처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백세 시대 가장 건강한 삶은 인공지능 마누라가 아니라 부부싸움을 할 수 있는 배우자와 함께 백년해로 하는 게 아닐까. 여우 같은 마누라가 새삼 고마운 날이다.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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