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경받는 어른이고 싶다

나는 W은행을 30년 이상 거래하고 있다. 며칠 전 집 앞에 있는 거래 지점 PB팀장으로부터 "대여 금고가 만료되었으니 오셔서 사인만 하시면 연장해드리겠습니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갔다. 담당자가 처리하고 있는데 팀장이 다가오더니 "우리 지점 거래실적이 별로 없으시네요. 다른 지점에는 거래가 많으신데..."라고 하더니 3년짜리 적금을 하나 들어주시면 좋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수속을 다 밟고 사인을 하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이게 적금이 아니고 펀드다. 내가 팀장에게 "이거 원금손실이 생길 수 있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럴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렇게는 안 됩니다"라고 하는 거다. "손실이 생기면 누구 책임이죠?"라고 했더니 "그거야 고객님 책임이죠~"라고 한다. 그래서 "그럼 난 안 하겠습니다. 이거 '꺾기'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 말이 기분 나빴던 모양이다. "그러시면 주거래 지점에 가셔서 대여금고를 사용하십시오. 저희 지점에서는 못 해 드립니다"라고 하는 거다. 어이가 없다.


원래는 이 지점이 아니라 전에 살던 집 근처 지점에 거래하고 있었는데 몇 해 전 지점 통폐합이 되면서 폐쇄지점 PB팀장이 주거래는 기업 계좌가 있는 지점으로 다 옮기고 그 지점은 집과 거리가 머니 대여금고는 지금 사는 집 가까운 지점에서 사용하게 해줬다. 내가 저간의 사정을 얘기하면서 "나는 30년 이상 W은행이 주거래이고 어느 지점이던 전체 실적이 있으면 되지 지금 와서 거리가 먼 지점으로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했더니 그녀가 "저희 지점 방침도 있으니 그 지점 가셔서 상의하십시오"라고 한다. 수차례 따졌지만 그녀는 막무가내로 "저는 못 해 드리니, 제 처사가 불만이시면 민원 넣으십시오"라며 딱 자른다. 이제는 내 인내심이 바닥나서 나도 언성을 높이며 "뭐라고? 그래, 당신 입으로 민원 넣으라고 했지? 어디 두고 보자"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럴 수가 있나. 내가 그 은행의 전신이던 S은행, H은행 때부터 거래를 해왔는데 이건 아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화가 안 풀렸다. 지들 사정으로 지점 통폐합하고 지점을 정해서 옮겨줘 놓고 이제 와서 저간의 사정도 모르는 여행원이 못 해주겠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돌아와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그녀 말대로 민원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영 편치 않다. 내가 명색이 가정행복코치 직업을 갖고 있고, 대화법을 강의하는 사람인데 일개 여행원 말 한마디에 내가 이렇게 쉽게 흥분하고 화를 내고 민원을 넣고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어지는 거다. 내가 좋아서 30년 이상 거래해 왔는데 왜 내가 진상 고객 소리를 들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래, 이건 양식 있는 어른이 할 일이 아냐. 이런 건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아가 ”이 기회에 내가 나를 한 번 시험해보자. 이 사건을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아보자'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게다가 지점 책임자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역지사지의 생각마저 들었다.


이틀간 마음을 정리한 후 다시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나를 보자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그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동안의 스토리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니 그녀가 커피를 내온다. 그녀는 내가 다시 따지러 온 줄 알았다가 내가 부드러운 어조로 사정을 설명하니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 "저는 고객님께서 민원 넣으실 줄 알고 이미 지점에 보고 다 드렸고 대여금고도 이미 계약 해지했습니다. 근데 고객님이 이러시면 제가 당황스럽잖아요"라고 한다.


이미 계약 해지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게 너무 싫습니다. 고객이던 은행원이던 서로 갑질을 하고, 삿대질을 하고 민원을 넣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이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 아닙니까. 난 그런 게 너무 싫습니다. 내가 당신 나이보다 20년 가까이 많은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어른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 세상에 저런 어른도 있구나~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온 겁니다. 당신 뜻대로 해지해도 좋습니다. 나는 거리가 좀 떨어진 지점으로 가면 됩니다."라고 했더니 그녀가 어쩔 줄 몰라하더니 "저도 은행 경력 20여 년인데 고객님 같은 분은 첨 봤습니다. 다들 불만이 생기면 고함부터 지르시고 지점장 나와라~ 어쩌고 해서 서로 불편해지는데 고객님처럼 이렇게 하시는 분은 처음 뵙네요. 죄송합니다. 이미 해지는 했지만 그 금고 번호로 새로 계약을 해 드리겠습니다."하고 마무리가 됐다.


'아, 내가 승리했구나' 유쾌, 상쾌, 통쾌했다. 그녀와의 싸움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아, 나는 오늘도 성장했다. 수경아, 참 잘 했다!


교훈

1.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간다

2. 상황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대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3. 모든 문제에는 복수의 해결방안이 존재한다

4. 화가 나면 하루 이틀 묵혀라

5. 어른도 성장할 수 있다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
저서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 (결혼 분야 스테디셀러)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 (결혼 분야 베스트셀러)




매거진의 이전글잔소리와 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