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뭘까? 한자 풀이를 보면 사람 人, 태어날 生.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거다. 그게 인생이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생(生)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태어나는 것과 사는 것. 결국 어떤 생(生)인가가 포인트다.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살지는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내 인생에 책임지는 거다.
대부분 사람들이 갖는 욕구는 뭘까? 행복하게 사는 것. 즉 잘 사는 것 아닐까?
잘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잘 산다'의 단어 뜻풀이를 보면 '부유하게 살다'라고 되어 있다. 이번에는 '잘'이라는 단어 뜻풀이를 보니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익숙하고 능란하게'라고 돼 있다. 그러고 보면 어학사전에 실린 단어의 정의부터 벌써 잘못돼 있다. '잘 산다'라는 말이 오로지 경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듯이 부사 '잘'의 원래 의미에는 경제적인 뉘앙스가 없다. 그런데도 너도나도 돈만 많으면 잘 사는 거라고 인식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잘 산다(live well)’라는 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경제적 의미(to live in luxury)도 있지만 도덕적 가치(to lead a virtuous life)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결국 잘 산다는 건 옳고 바르게 사는 거다. 좋고 훌륭하게 사는 거다. 어쩌다 한 번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그렇게(익숙하고 능란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산층에 대한 한국인과 선진국의 기준을 봐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 중산층의 기준
부채가 없는 30평 아파트 소유, 월 500만 원 이상의 급여, 2000cc급 중형차, 1억 원 이상의 예금 잔고, 연 1회 이상 해외여행 갈 정도의 여유를 가진 사람을 중산층으로 본다.
선진국의 중산층 기준
<프랑스의 중산층>
1개 이상의 외국어를 할 것,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을 것, 1개 이상의 악기를 연주할 것, 자신만 아는 색다른 요리법이 있을 것, 사회적 분노에 공감하고 약자를 돕는 봉사활동 등
<영국의 중산층>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이 있을 것, 독선적 행동을 하지 않음, 약자를 보호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불평/불법에 대응할 것
<미국의 중산층>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사회적 약자를 도울 것, 부정과 불법에 저항, 비평지 정기구독 등
확실히 한국인들은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반면 선진국은 정신적, 도덕적, 문화적, 공익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임을 알 수 있다.
태어나서 백 년 가까이 살다 죽는 인생
20살이 넘으면 성인(成人)이라고 부른다. 공자는 <논어> 위정 편에서 남자 20세는 약관(弱冠), 30세는 이립(而立), 40세는 불혹(不惑), 50은 지천명(知天命), 60은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여기서 약관이란 20살이 되어 성년례(成年禮)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즉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책임 있게 살아 내라는 뜻이다.
成人의 의미는 '이룬 사람'이란 뜻이다. 고작 20살에 뭘 이뤘겠는가? 사실 공자가 이 말을 한 것은 자신의 학문 수양 과정을 회고하는 대목에서다. 그러니 우리 같은 범부들한테야 해당되지 않는 말일 테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자. 그래서 내 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미 이룬 사람이 아니라 이제부터 이루라는 뜻일 거다. '이룬다'라는 말은 원하는 상태로 된다는 뜻이다. 즉 '완성'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구가 있고 그 욕구를 충족시켰을 때 우리는 만족하게 되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행복감을 느낀다. 완성된다는 말은 내가 내 인생에 책임을 다했다는 말이다.
내 인생에 책임지며 살고 있는가?
2023년 연말 우리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누군가 경복궁 담벼락에 낙서 테러를 했다는 뉴스였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다음 날 또 한 명이 낙서 테러 모방 범죄를 저질렀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복구비용이 1억 원 이상이 들었다며 그들에게 비용을 청구할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낙서 한 번에 1억 원이라는 어마무시한 배상금을 물게 된 것이다. 이들은 뒤늦게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을 거다. 단 한순간의 치기나 실수로 인생 종친 것이다. 꼭 이번 사건이 아니라도 우리 주위에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온라인 댓글을 함부로 달아 타인의 인권을 욕보인다던지, 가짜 뉴스를 만들고 퍼뜨리거나, 철 모르던 어린 시절 학교 폭력 가해자가 된다던지, 재미 삼아 몰카로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다던지 하는 행위들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몇 년 안 돼 후회하곤 한다. 과거에도 같은 행태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개인의 역사에 머물렀다. 훗날 성인이 되어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고 잘 살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과 SNS의 발달로 만천하가 다 알게 돼 있다. 우리 주위에도 유능하고 잘 나가던 사람들이 어릴 적 학교 폭력이나 성적(性的) 문제들이 뒤늦게 까발려져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자기 인생을 책임지기는커녕 자기 인생의 테러리스트다.
미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훗날 내 묘비명에는 어떤 글귀가 적힐까? 남의 인생은 차치하고 적어도 내 인생만큼은 책임지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