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우중충한 파란색으로.
사회생활 7년차.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 분명 첫 시작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 가득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돌아보니 그때 어떻게 그렇게 밝을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회사 복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은근 지고지순한 성격이기도 해서 군대 문화로 가득찬 소위 '남초' 회사를 지나 (이때는 다나까 말투를 쓰고 회사를 다녔었다.) IT 스타트업으로 옮겨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던 때에도 내가 부족한 거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다. 그때는 회사 복이 안 좋은 게 아니라 내가 갈피를 못 잡고 내가 부족해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하루도 안 쉬고 달려오던 6년차를 바라보던 시점에서 회사라는 시스템이 나와 맞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1여년을 쉬었지만 결국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어있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다니려고 했지만 맛있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똑똑하게 사회 생활을 하는 것도 해본 사람이나 하는 거였다. 다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자리를 잡아보려는 내 노력과는 다르게 나는 또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그렇게 내 기분이 푸르게 변했다.
그것도 밝고 맑은 푸른빛이 아닌, 아주 우중충한 파란색으로.
뭐든 경험이 되겠지 싶어 오는 일 안 막고 뭐든 해버릇하는 나는 이제 제너럴리스트도 아니고 스페셜리스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애매하게 끼어버린 이력서를 갖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까, 커리어가 목적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던 나의 사회 생활은 만 6년 1개월만에 그 정체를 드러냈다. 성을 쌓는다고 쌓았지만 재료가 모래인 건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커리어 목표나 방향성 같은 물을 섞어 단단하게 진흙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내가 만드는 것도 성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며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보낸 시간은 결국 거센 바람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모래성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회사를 다니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뭘 하고 살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특출나게 뭔가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고, 모든 걸 다 걸면서까지 꼭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게을러서 그런가, 아직 철이 덜 들었나.
MBTI가 처음 국내에서 화두가 되기 시작했을 때 내 관심을 끈 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가 아니라, '내 성격은 이런 일과 잘 맞는구나'였다. 하지만 거기서 끝일뿐, 이상하게 끌리는 직업도 없었고 갑자기 모든 걸 다 버리고 공부부터 다시 해서 도전해보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이렇게 살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나만 뭘 하고 살고 싶은지 모르는 건 아닐거야, 우리 엄마도 50대가 되서 제일 잘 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았는걸! 이런 생각으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켜진 적신호를 모르는 척 하기 바빴다.
그 순간들은 내 기분이 푸른빛으로 변해간다는 신호였고, 그걸 직감할 때마다 나는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억지로 내 기분의 채도를 밝고 쨍하게 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주식도 아닌데 푸른빛이 돈다고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그걸 그렇게 억지로 빨갛게 만드는 데에 혈안이 되었었는지.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지도 않았고, 해결되지도 않았으니 내 기분은 틈만나면 푸르게 변하기 일쑤였다. 그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것만 같다. 해결책은 당연히 나에게 있는데 내가 답을 찾을 수 없으니 주변도, 나도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답답하다고 또 고개를 돌릴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러니 더 죽을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