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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Mar 11. 2019

1960년대에는 흑인여행자만을 위한 가이드북이 있었다

영화 '그린 북'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 전 회차들과 마찬가지로 참 이변이 많았습니다. 30년 만에 사회자가 없는 시상식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제가 예상했던 여우주연상 후보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즈가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최다 노미네이트를 기록하게 되었죠. 
    

원리원칙주의자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와 말보단 주먹이 앞서는 백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린 북'

  
이변과 논란의 중심에 선 또 다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그린 북'인데요. 원리원칙주의자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와 말보단 주먹이 앞서는 백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때는 1962년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미국 남부 투어를 위해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를 고용하려 하죠. 그 전까지만 해도 클럽에서 가드 역할(온갖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을 했던 토니 발레롱가는 클럽이 문을 닫게 되자 생계를 위해 운전기사 면접을 봅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운전기사 일은 물론 매니저 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지만 토니는 돈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며칠 후 떠나게 된 투어에서 토니는 공연 기획사 담당자에게 한 권의 책을 받게 되는데요. 이 책이 바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 북'입니다.  


그린 북은 1936년부터 1966년 사이에 발행된 여행 가이드로, 흑인 여행객들이 환영받을 만한 호텔, 식당, 술집, 주유소 등을 열거했다.


'그린 북'은 흑인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으로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제작되었습니다. 심한 인종 차별로 인해 자유로운 여행이 어려웠던 흑인을 위해 숙박 시설, 레스토랑, 주유소 등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을 표시한 책이죠. 이 책은 투어 내내 그들과 함께합니다. 
  
백인의 파티 자리나 공연장, 심지어 백악관에서도 초대를 받아 공연하는 그이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밥도 함께 먹을 수 없고 화장실도 함께 쓸 수 없는 상황을 보면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데요. 이는 일전에 소개해드린 바 있는 영화 '헬프'와도 닮아 있습니다. '헬프'의 미니 역이었던 옥타비아 스펜서는 이 영화의 기획자로 참여하기도 했죠.

  

돈 셜리 역으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마허샬라 알리는 우리에게 영화 '문라이트'의 후안 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문라이트'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로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같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화 '그린 북'으로 또 한 번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마허샬라 알리.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는 모습.

  
마허샬라 알리는 백인의 차별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외롭고 고독한 피아니스트 돈 셜리 역을 잘 표현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피아노 연주 장면은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는 피아노 연주 장면을 위해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자 피아니스트인 크리스 보워스와 자주 이야기를 나눴고, 실제 돈 셜리의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그의 말투나 행동, 습관 등을 영화 속에 녹여내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영화 속 그가 연주하는 곡들은 실제로 연주하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죠. 포털 사이트에 연관검색어로 '마허샬라 알리 피아노'가 뜨는 걸 보면 저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남우조연상 외 작품상, 각본상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일부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고 알려진 반면 실제 돈과 토니는 영화에서처럼 친하지 않고 "철저한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라 전해지며, 영화에서는 가족과 몇 년째 연락하지 않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돈은 가족과도 잘 지내는 등 실제와 다른 부분이 많다고 합니다. 


극 중 토니는 투어 중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를 돈이 돕고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전체 내용으로 볼 때 돈이 인종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토니가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는데, 이 부분이 '백인이 흑인을 구원한다'는 맥락으로 보일 수 있어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 실제로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지만 두 배우의 케미와 앞서 말한 마허샬라 알리의 연주 장면, 그리고 인종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재미와 감동 코드로 버무려주어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봉한 지 2달이 넘어가는데요.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파로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이니 못 보신 분은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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